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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白空間」으로서의 회화세계 1992

- 다시 崔明永의 「平面條件」에 대하여 –

 

1976년 이래의 「平面條件」. 자그마치 15년여에 걸쳐 계속해 온 일관된 崔明永의 작업이다. 물론 거기에는 화풍상의 변화는 있었다. 대략 살펴보자면 수평구조의 횡적(橫的)구성(이 시기의 작품을 그는 <등식(等式)>이라 불렀다. 순수 색면에 의한 모노크롬(주로 黑과 白色), 그리고 다음으로 불규칙적으로 단절된 격자(格子)문양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다시 1년간의 영국체류 (1990-91)이후의 근작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崔明永은 회화의 절대조건으로서의 평면성을 고집하고 있고 또 탈(脫)구성, 탈중심(脫中心)의 모노크롬의 세계를 지켜오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향과 함께 특히 근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화면에 감도는 보다 열려진 「자연스러움」이라 할 것이며 그 자연스러움은 화면을 뒤덮고 있는 黑 또는 白色의 대범스러운 색조(色調)조절과 그 화면위에 드러났다 다시 사라지는 듯한 선조(線調)의 처리에서 나타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색조나 선조가 다같이 균질적(均質的)으로 통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덤덤하게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崔明永의 회화는 그 자체가 「여백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백이라고 해서 그것이 그 어떤 여분의 빈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쩌면 그 여백 공간을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즉 하나는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허(虛)」의 정신 공간으로서의 여백이요, 그 또 하나는 충만 된 「절대 공간」으로서의 여백이 그것이다. 崔明永의 회화에 있어 수직과 수평은 무한과 유한의 함수관계로서 그대로 넓이와 깊이를 함께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독립된 우주상(宇宙像)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나는 崔明永의 회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쓴 바가 있다. 「때로 그의 모노크롬 화면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소단위의 네모꼴이 드러난다. 그 네모꼴들은 그러한 모양으로 화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드러나고」있는 것들이며 바탕으로부터 스며 나오듯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의도된 것들이며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고루 화면을 덮고 있다. 」(1986년의 崔明永의 「平面條件展」서문 중에서)

당시의 작품과 근작을 비교해 볼 때 그 기본적 발상에 있어 어떤 변화가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평면 조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불구하고 거기에는 그 어떤 분명한 변화의 징조가 보이고 있으며 그것은 곧 평면을 이루고 있는 「조건」의 변화이다. 崔明永에게 있어 「평면 조건」이란 다름 아닌 평면으로서의 구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을 ‘80년대의 작업에서는 앞서 든 서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화면을 고루 덮고 있는 「의도적이고 규칙적이고 또 반복적인 네모꼴들」에 의해 이룩했다.

그와 같은 의도적인 네모꼴이 근작에 와서는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기 보다는 「해체」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규칙적인 네모꼴대신 수직 ․ 수평의 불규칙적인 선조(線調)들이 마치 사라지다 만 흔적처럼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고 사라졌다 다시 드러나고 있다. 거기에는 이미 동일 패턴의 반복은 없고, 화면에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무작위적으로 단절된 수직과 수평의 교차요, 그 비(非)연속의 확산 같은 것이다. 따라서 화면 또한 균질적인 평면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작에로 올수록 崔明永의 「평면 조건」은 수직․ 수평 선조의 명멸(明滅)이 은밀해지면서 차츰 더 내재화(內在化)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보다 원천적인 생성과 소멸, 즉 「자연」의 섭리에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접근하려는 시도로도 보이거니와, 그러한 시도가 앞서 말한 바, 「여백 공간」으로서의 회화세계를 낳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백색 또는 흑색 모노크롬과 그것에 대비(對比)되는 수직․ 수평 선조들이 말하자면 유한과 무한의 「공간 조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유추(類推)일지는 모르겠으나 崔明永의 회화적 발상과, 한편으로는 몬드리안, 또 한편으로는 말레비치의 그것과를 견주어 생각해 본다. 수직․ 수평의 몬드리안과 모노크롬(특히는 1918년 작의 <흰 바탕위의 흰 네모꼴>)의 말레비치. 崔明永의 회화는 이들 두 화가 각기의 특성적 요소를 다같이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조형적 사고가 합리주의적인 것이든 또는 초월주의적인 것이든 거기에는 그들에게 다같이 공통되는 「한계」가 있다. 바로 기하학주의라고 하는 한계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각적인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며 崔明永은 그 한계를 부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펼쳐 보이고 있는 세계가 다름 아닌 「여백 공간」의 세계이다.

1992. 10

李 逸 (美術評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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