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화라는 새로움 (새로운 심화)
2015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최명영의 개인전을 보러갔다. (최명영 / 평면조건 전, The Page Gallery, 8-9월). 그곳에는 1975년의 작품에서 신작까지 이를 테면 회고전을 겸비한 신작전으로 매우 큰 규모의 전시였다. 최명영을 만난 것도 모처럼 오랜만이고 일련의 그의 작품들을 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았을 때 이를테면 <평면조건 8196> (도록번호 29번)처럼 흰색을 몇 번이나 겹쳐 칠한 모노크롬의 작품 군을 보고 있다 보면 나의 눈이 자연스럽게 강한 반응으로 감지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방문해서 현지의 한국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1981년 이었고, 확실히 최명영의 작업실을 방문 했을 때 본 작품 군이 이 작품들이었다고 짐작된다. 35년전의 일이지만 큰 감명을 받았었다. 나는 그 보다 5년 연하이고 이제 2015년이 되어 서로 나이도 들어서인지 전시장에서 나의 신체와 눈이 자기 도 모르게 센티멘탈 한 감성으로 되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감성을 뿌리 치고 전시장의 작품 군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을 때 두 가지 인상을 느꼈다.
첫 번째는 [본질적인 변함없음]일 것이다. 진정한 화가, 본질적인 화가는 젊음에 기댄 시행착오의 시기를 지나 자신이 실현해야 할 회화의 펼침을 감각적으로 파악한 이후에는 일관되고 변치 않게 되는 것 같다. 변화가 없다 라고 하겠지만 변하지 않는 재능도 있다. 근대의 어느 시기 이후 [새로울 수록 좋다(The newer the better]든가 표현은 언제나 새롭지 않으면 않된 다 라는 사고가 지배했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라고 부정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것은 회화의 [표면적인 양식]의 변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변화나 전개라는 것은 깊이 있는 향함이어야 만 한다. 단 회화라는 평면작품 에서는 그 깊이라는 것은 적어도 평면위에서의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에 회화라는 예술의 곤란함이 있다. 동시에 어떤 곤란함이라도 거기에는 [심화] 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회화는 진화하는 예술이 아니라 한결 같게 심화 해야 할 예술인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심화 안에서 변화라는 것으로 특히 1997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작품들에서 느꼈다. 그것에 관해서는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서 조금씩 시간을 걸쳐서 생각해보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에 대해 기술해 보려 한다.
2 . 도움닫기
1941년생의 최명영은 1960년 중반 무렵 학업을 마친다. 그리고 청년기 의 시행착오 거친 후 1976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 이후 그의 자취 는 일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일관된 방식에는 그의 작품명제이기도 한 [평면 조건]으로 철저하게 귀결되고 있다. 그 철저함에는 화면구성의 방식, 색채, 필치, 사용재료(물감, 지지체, 붓 등)을 규정하는 것 까지 다루고 있다 . 주제, 방법, 재료를 미니멀화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서구의 미니멀리즘 으 로 연상되는 것과는 다르게 제거해나간다 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회화 사상을 극한화 하고 결과적으로 그 시도가 단순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일관된 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1979년에서부터 1981년에 걸쳐 3년 정도 시기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1976년 첫 개인전으로 커다란 전환 점 의 된 최명영은 이 3년의 시기에 하나의 정점, 그 보다도 극한을 체험하 고 있었다. 그 특징은 먼저 화면의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 말하자면 순수 하게 평평한 화면, 완전히 평면적인 화면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작품명제 모두 [평면조건]으로 통일된 것은 1977년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직전의 명제는 [등가성(Equality)] 이었다. 그것은 좁고 긴 화면을 수평으로 분할하 고 수평 면 각각에 좁고 긴 방향의 필치를 남긴다. 이 방법은 매우 단순한 작업이다. 하지만 화면을 수평으로 분할한 것이 아직 어딘가 [구성주의 (Constructivism)] 을 연상시킨다. 또한 필치가 분명히 억제되어있고 그렇 다고 표현주의 (Expressionosm)적 인 것도 아니다. 더욱이 색채는 개개 의 작품들이 단색 이지만 엷은 청색, 엷은 회색, 짙은 청색, 짙은 고동색과 같은 그 나름의 변화(Variation)가 있고 , 단정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흑과 백은 아니었다. 구성, 색채, 필치를 여러 번 한다거나 그것들의 변화를 준다고 하는 방식은 관객으로선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들어나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 대신에 [등가성(Equality)]의 시리즈에서는 단순화, 극한 화가 아직 철처하진 않다고 느껴진다.
3, 전환
이 작품 군을 이를테면 도움닫기 단계로 최명영의 작품은 차츰 전면(All over) 으로 칠한 흔적의 필치가 거의 남기지 않게 되고 1979년 부터 1981 년을 거쳐 이런 시도의 정점을 향해간다. 예를 들어 유화로 제작하는 경우 는 평평하게 몇 번이나 겹쳐 칠하고 결과적인 화면이 전면적으로 된다. 화면의 사각 귀퉁이의 가장자리를 주의 깊게 보면 다층의 칠이 반복되어 겹쳐짐을 알게 되고, 조금 떨어져서 보게 되면 겹쳐 칠한 두께 그 자체에서 열기, 정념, 아우라를 뿜어내 그것이 관객의 눈에 조형적(공간적)한편으로는 심리적인 두께, 흔들림이라는 움직임,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화면을 평평하게 (All over) 하려는 것도 추상회화를 하려 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회화가 평면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회화 의 평면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시도이다. 회화평면을 회화평면으로 성립 시키는 [조건의 그것]의 탐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모노크롬 파]가 공통 화 하는 관심사의 하나였다. 그 안에서 최명영의 특이점은 시도의 단순화와 극한화이 라는 점이다. 다른 모든 요소, 구성, 필치, 색채라고 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구성을 배제하며, 평평한 칠함과 단색으로만 자신의 시도를 한정해 가는 것 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 내에서 있는 것, 그리고 상상의 내에 서 떠오르는 것, 그 모습을 재현하는 종래방법의 바깥쪽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린다고 하는 핵심에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4, 구성
필연적인 것인지 [구성]이라는 모습 그 자체를 지워버린다. 평면이 평면 적으로 평평하게 칠해 덮어간다는 것 자체도 이를테면 구성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구성을 내제화시키는 것이다. 회화에 있어서 구성을 형과 색채에 의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면 평면 위에서의 내재적으로 집약하는 것 이다. 따라서 종래의 의미의 구성은 사라진다. 조금 비교하자면 서구의 추상회화가 전개해 나갈 무렵 특히 2차 세계 대전 후 에 일어난 것은 (예를 들어 프랑크 스텔라의 경우) 횡한 색면으로 물질화시켜 구성자체가 소실하는 (내지는 횡방형인지 종방형으로 색을 바꿔 가면서 구성 비슷하게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를들어 마크 로스코 처럼) 사상과 내면 감정 등을 육체노동으로 화면에 지속적 으로 칠하는 것으로 구성은 소실되는데 그 사상과 내면 감정이 구성의 대역을 하는 경우였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대역이지만 구성은 아니다. 단지 후자의 경우 로스코의 천재성을 가지고서도 완전한 평면의 색면으 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이론적 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형 적으로 다른 여지가 없다. 로스코의 경우 그것은 필치가 아니라 [색의 위상 차이] 이라는 점은 주지 할 사실이다. 그 [위상차]를 통해서 사상과 마음을 암시 하는 것이다. 최명영의 경우 물론 그 어느 쪽의 길을 간 것도 아니고 절충은 물론 아니다. 조형적으로 구성을 생각하지 않고 화면을 향한 시점 에서 의식적으로 서양이라는 회화의 외측의 평면작품이라는 지평으로 들어 난 것이다. 그러한 지평은 회화와 전혀 무관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도 할 수도 없다. 서양회화를 부정해서 그 외측으로 나온 다고해도 그는 또다시 자기의 인간적, 또는 회화적 나타냄과 현상을 다시 파악하는 것이다. 먼저[구성]보다도 화면을 단색으로 평평하게 칠한다는 방법으로 했을 때 그가 직감적으로 이해한 것은 그 행위가 반복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반복하는 것이다. 우선 그러한 자연의 리듬으로 그리는 행위를 동조 시키며 맞추어보고 반복해본다. 이념이나 개념차원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신체의 감각으로 체득되지 않으면 힘든 문제이다. 그것은 어는 의미에서 스포츠의 연습이나 수도승의 수행과 같은 실천적 시간을 요구한다. 잠시라도 여유를 부릴 틈도 없다. 오해 없이 여겨지지만 최명영은 그린다 라는 행위 그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다. 수없이 반복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반복하지 않도록 반복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매년 같아보여도 실은 지속적으로 다르게 반복되어 간다. 그는 이점에 주목한다. 같은 것에 대한 반복은 그에게선 차이의 축적이기도 하다. 또한 같은 것의 반복은 차이를 약화시키고 진정시킨다. 이렇게 약화시키고 진정시킴으로서 반복행위의 결과가 순수화 되어간다. 평평하게 된 화면상 의 차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더라도 느낄 수는 있다. 따라서 구성이라고 말한다고 했을 때 이러한 새로운 구성이 생겨 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종래의 의미의 구성이라기 보다는 [심적으로, 감각적 으로 , 구조화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평면작품이지만 그의 반복은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설프고 어중간한 개성의 구성 보다도 강한 구성인 것이다. 참고로 그는 자연을 [모방(Mimesis)]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최명영 이라는 동양인 이 자연의 일부에서, 자연 안에서 자연으로부터 태어나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는 자각하며 그것에 따라갈 뿐이다.
5. 색채
그리고 색채를 극도로 한정하고 필치를 남기지 않게 그리고 있다. 색채는 기본적으로는 흰색 과 검정만으로 한다. 단 주지한 것처럼 흰색이라 고 해도 같은 흰색이 아니다. 조금 크림색을 느낄 정도의 흰색과 흰색 그 자체의 색 이 라고 할 만큼 그 폭은 넓다. 검정 또한 그을음이다. 그 폭이 결국 색채라고 할 수 있다. 검정의 농담에 의한 묘사방식과 종이와 천 자체 의 흰색으로 표현하는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색채관이 있다. 그렇더라도 화가로서 색채를 한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현대의 동양 화가로서 검정과 흰색 만 으로 표현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가능하다면 자유 롭게 색채를 사용해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최명영은 철저하게 사고하고 철저하게 실천한다. 총 천연색의 자연과 세계에 대해서 본래적으로 회화는 대항할 수 없다. 그러나 서양과 같이 대항하려 했던 그 의욕과 노력을 무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다. 근본적으로 틀렸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기에 다른 방법을 고려해 야 하는 것이다. [실제와 같은 모방]은[실제와 같은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인으로선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 없다. [다른 방법] 으로서 색채에 대해서는 색채를 제한 해 보는 일이고 어정쩡한 한정보다는 결국 흰색과 검정이라는 색 (내지는 두가지 색) 으로 한정한다는 논리는 명백하다. 흰색과 검정은 색채로서 두 가지이지만 동시에 상호보완적이라는 의미에 서 [하나의 색]이기도 하다. 동양적인 감성은 흰색과 검정은 한 짝이다. 보색관계라기보다는 역사적, 심적, 감각적으로 어느 쪽에서든지 겉과 안쪽이 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한가지 색 (내지는 두가지 색)에의 한정은 최명영에게선 필연적 인 것이다. 당연히 그 한정된 상황을 거꾸로 뒤집거나 이를테면 자기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생각하려고 한 게 아닌가. 여기서 최명영의 특이한 점은 흰색과 검정이라고 하는 색채를 표현한다는 동양의 전통적인 색채관을 가볍 게 수용하지 않으려는 점이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흰색과 검정도 색채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 , 유화물감의 흰색과 검정 의 경우는 [바탕]이 존재하지 않는 점(지지체로는 천 또는 합판을 사용) 바꿔 말하면 [바탕과 이미지]라는 구별이 제거 된다 라는 점, 먹과 종이 (한지)를 사용하는 경우 사각 모퉁이에 지지체의 바탕이 스스로 보이게 한다는 점, 이외에 파란색등을 사용하는 작품이 있다는 점. 여기에서 짐작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그는 흰색과 검정을 확실히 색채로 다루고 전통적인 동양의 색채사상도 받아들이고 있다. 흰색조의 변주 는 마치 먹으로 표현한 검정의 온갖 색채를 보는 것과 상통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적합한 표현일지 몰라도 그에게서 흰색 또는 검정으로 한정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좁혀짐] 안에서 또 다른 종류의 [펼침]이라 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좁혀짐] 을 택하고 그것을 떠맡음으로 해서 하나의 [펼침]에 이르는 것이다. 극한화가 또 하나의 펼침을 가져다 주는 것 이다. 그리고 그 펼침은 좁혀짐과 같이 있음으로 해서 이른바 [색채]라는 것을 중성화시킨다. 색채라는 문제를 어떻게 하든 좋게 하면 된다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어떤 색채라도 허용하는 지평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 을까. 만약 그렇더라면 이론적으로 최명영은 어떠한 색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흰색과 검정이외의 일반적인 색채는 무언가의 관념과 연결되어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 예로 붉으면 피와 정열, 초록이면 나무와 풀, 푸른색이면 하늘과 바다처럼 말이다. 이러한 [색채의 중성화]는 그의 작품에서 좁은 의미의 회화를 그 바깥 쪽 으로의 펼침으로 개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회화보다는 큰 펼침] 이 그의 평면작품의 장으로 된 것이다 라고 한다면 [중성화]라는 말하는 것 은 조금 달라진다. 그것은 사실 색채의 내용의 변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색채 본연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바탕과 이미지]의 구별을 제거한 것은 [필치]의 문제 로 다루는 게 좋을 듯하다.
6. 필치
예를 들어 추상적이라고 해도 필치가 표현주의적 이였다면 작품은 회화 적으로 되기 때문에 최명영의 경우 색채의 한정은 어쨌든 필치의 한정을 수반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붓을 평평하게 움직여 제작한다. 이 시도 가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1979년 부터1981년 에 걸친 시기이다. 색채의 한정은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 거의 흰색과 검정으로 되었다. 한편 필치의 경우 이 3년 이전에는 아직 변화하고 있었고 그 이후가 되면 극점을 넘어선 모습을 획득하고 있다. 필치에 관해서는 이 3년간은 어떤 의미에서 분수령이 되었고 극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3년 사이에 흰색 의 작품에 집중해서 보자면 화면의 텍스츄어가 약간 거칠게 부터, 약간 꺼글 꺼글하게, 완전히 평평하게 까지 세심하지 못한 관객이라면 기계적으로 칠한 것이 아닌가 하고 놓쳐버릴 수 있을 정도까지 균질화 한다. 화면이 추상적인 작품의 경우 필치는 화가의 행위, 표현성, 감정 등 을 직접적으로 들어내는 수단이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름이지만) 화구와 화포 라는 물질을 강조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필치를 아예 없에 버리는 것은 그 어느 쪽의 가능성도 배제하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부정성을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처음부터 단순화와 극한화를 목표로 한 최명영은 첫 개인전에서 부터 4-5년 만에 도달했다. 그 도달점 의 작품은 거의 사라진다. 또한 네 변의 모퉁이를 주의 깊게 보면 다층으로 겹쳐 칠해 평평해 져 있고 바탕과 이미지가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신비로운 점은 겹쳐 칠한 모습이 눈으로 식별하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 하고 물리적보다도 심적, 감각적, 신체적인 지금까지 없었던 하나의 [두께] 와 같고 마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 두께는 그 바닥에서 바탕이 없을 수 있다고도 느낄 수 있다. 보통의 추상회화라면 화면 아래의 바탕이 보이지 않더라도 관객과 작가는 바탕위에서 추상회화가 성립 한다고 간주한다. 회화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랬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명영의 이 흰색의 작품에서는 바탕과 이미지가 하나가 된 것이다. 무언가를 그린다고 하는 의미에서 이 작품에선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아니기에 이미지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 원래 없다. 그리고 이미지 없는 곳 에는 바탕 또한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이러한 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치도 텍스츄어도 갖지 않 은 흰색 화면 임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운 평평한 화면이 아니라 심적으로 감각적으로 신체적으로 [펼침], 어느[두께] 를 느끼게 해 하나의 [펼침]을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펼침]은 [불가능성의 펼침] 이고 [두께]조차 느끼게 한다고 해서 결코 입체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평면]의 [펼침]인 것이다. 다시 말해 [평면이라는 펼침]인 것이기에 그 [펼침]은 이른바 회화는 아니지만 이름붙이자면 회화로 부를 수 밖에 없다.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바탕]과 [이미지]의 구조 안 에서 성립하는 회화 아닌 회화가 여기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그것을 가능 하 게 하는 것은 [색채]도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필치] 다시 말해 [그리는 그 자체]가 결정적이다. 손으로 붓을 들고 움직이지 않으면 회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회화가 현실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린다는 행위이고 그 행위가 현실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필치와 색채의 취급에 지나지 않는다. 회화사상은 이념과 관념으로 회화를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작행위는 손(신체)에 의할 수 밖에 없다. [필치]는 영어로 [터치(touch)] 결국 [ 접촉하는 것]이다. 지지체(화포, 종이, 판 등)이라는 물질의 표면에 접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명영의 [바탕과 이미지]라는 구조를 넘어서는 것은 그린다는 행위를 [물질]에서 해방시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회화는 최저한 지지체와 물감이라는 물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지지체와 물감을 사용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3년간 극한적인 작품에 있어서는 지지체와 물감의 물질성은 거의 사라 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회화는 물질성으로 부터 멀어져서 더 이상은 없을 정도로까지 순수화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물질성의 사라짐]을 다른 각도에서 말해보자면 물질성이 사라지는 흰색 물감의 화면이 신비롭게도 물질의 순수한 상태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북미의 [색면 추상회화(Color Field Painting)]에서 물감을 직접적으로 물질로서 제시한다면 그것이 물질의 순수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가 없다. 물질이 순수도 불순도 아닌 다만[있는 그대로]라고 만 할 수 있다. 그것은 [순수/불순]과 관계없다. 말하자면 물질은 반드시 인간의 의해 무언 가의 용도와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순수/불순]과는 다르게 인간은 [손의 흔적]이 반드시 남게 된다. 예를 들었던 스텔라도 로스코도 그의 회화 에는 그들의 [손의 흔적]이 남아있고 [손의 흔적]이야말로 그들의 작품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 것에 비해 최명영의 경우 반복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인가. 심적, 감각적, 신체적으로 끝까지 파고들며 밝혀내려는 시도가 그에게선 [물질성]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물감] 이를테면 그의 회화의 표면을 성립하는 [물질]이 말하자면 그의 [마음, 감각, 신체]에 동조 할 때까지 변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물감]의 본래의 모습, 결국 물질에 손 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까지 도달하고 있다. 우리들은 여기서 물질의 가장 순수한 물질성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 종래에 거의 볼 수 없었던 만남을 하고 있다.
7, 표현으로부터 이탈의 표현
회화가 다른 것으로 변용한다. 최명영의 3년간의 작품에서 우리들은 이러 한 놀라울만한 상태를 맞이한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회화를 가능한 순수하게 심적, 감각적, 신체적인 사항으로 변용시켰다. 현실의 세계와 환상 의 세계 의 [모습]과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서양적인 추상회화 도 아닌, 회화를 [마음]과 [감각]과 [신체]의 하나로의 순수한 총합, 그러한 표현의 모체로 하고 싶다. 그러한 욕망이 그에게서도 연상된다. 이것이 (이것 또한) 한국의 [모노크롬파]의 화가들의 공통된 욕망인 점 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 안에서는 최명영이 가장 순수하고 철저하다 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시도에 있어서 가장 금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엄격한 수행에 몰입 한 승려와도 같다. 따라서 관객은 아마도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쁘게 말하자면 거기엔 여유가 없다. 그 대신해 관객의 자세를 바르 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나처럼 보통은 자세가 좋지 않았던 관객도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등이 펴진다. 자기 자신의 [본연]을 생각하게 하고 저절로 몸과 마음이 솔직하게 된다. 관객의 등은 펴지더라도 작품이 절대 강요하진 않는다. 이렇게 극한적인 시도에서 작품은 매우 단정하고, 조용 하고, 차분하고, 아름다운 감촉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불가능성의 회화] 혹은 [부정성의 회화] 에는 자칫하면 어딘가 강압적인 것이 보통인데 그런 점이 보이지 않는 점이 신기롭다. 나는 그의 작품이 [극한적]이나[금욕적] 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지 망설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순수]라고 말하자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최명영의 작품에 [손의 흔적]이 들어나지 않는 것은 그의 반복 (제작 행 위)이 [표현에서부터 이탈의 표현]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에 매진 하지만 [표현]을 마주하는 방향으로 매달리게 된 것은 결국 반복 이상의 가능한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같은 새로운 도구가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 보다 가능 하다면 그 이탈의 과정 에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찾는 것이다. 최명영의 시도에서 특이한 점은 그 [이탈]그 자체를[표현]으로 변환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19세기 말 이후 지속적으로 인류적 규모로 회화에서는 [다른 단계]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다. 서양은 그 [다른 단계]라는 것은 다음의 새로운 무언 가에 의해서만 부여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들 동양인처럼 서양 근대 미술에 대해서 후발주자였던 비 서양세계의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이 근대미술 까지 달성시킨 것은 위대하고 결코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후발지역의 과거 유산을 그대로 가져간다고 하면 열등감의 반발이나 혹은 [역 오리엔탈리즘]으로서 그것은 [관광]적 발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후발지역의 각각의 과거의 유산은 중요하고 그것 으로 부터 무언가를 헤아리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훌륭한 것 이다. 단 그것은 서양의 문맥에 다루기 쉽거나 다음의 새로운 뭔가를 찾기 위함이었다면 당치도 않을 일이다. 1941년생의 최명영은 그것을 계속해서 염두 하면서 40세를 앞두고 [표현으로부터 이탈의 표현]에 도달한다.
8. 고개에서 능선으로
이 3년간의 경험을 거쳐 최명영은 자신의 새로운 [회화]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평평한 화면이 조금씩 변화를 보 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개를 넘어 산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고개에서 산의 능선으로 길을 찾았다는 점이다. 예술에 정상은 없다. 하지만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하나의 고개에 이르러 재능과 에너지를 발산하고 거기에서 하산해 버릴 수 있다. 1982년 이후 최명영의 발걸음은 고개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고개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순수화, 극한화의 지평을 계속 지속시켜가며 그 길을 걸었다. 1982년 이후의 이 발걸음을 (여기에서도 먼저 화면의 표면적으로 보여 지는 부분을 거슬러 보자면) 1982년에서는 화면이 정방형의 사각으로 분할 되여 나타나고 계속해서 1983년에는 이전의 [등가성]연작에서 보여지는 수평의 분할이 그 이후에 단장을 새롭게 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9 97년 이후 화면이 그 양자를 총합시킨 시도로 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예를 들어 1983년 수평의 분할 작품. 이것은 먹물로 전면을 검게 한 한지 (한지를 먹물에 담갔다)의 위에 흰색 한지를 좁고 가늘게 띠 모양으로 잘라서 횡으로 길게 붙여갔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의 경우, 변화 혹은 전환 의 시기에는 화포가 아니라 한지와 작품의 시도였다) 그것의 제작방식에는 화포의 경우 물감의 면이 닿는 곳이 먹 하나의 색 위에 흰색 한지의 면이 올려 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먹 의 검정 면과 한지의 흰색 면이 동격이고 이 두 가지가 한 면이 되어 [회화 공간]을 이루고 있다 라는 점이다. 여기서 한지의 흰색 면이 단순히 위에 있다는 이유보다 더 중요한 점이 직전의 [3년간]의 흰색 면의 연장 이었다 라는 데에 있다. 흰색물감 대신해서 흰색 한지를 사용한 것이다. 띠 모양 으 로 잘라 붙이는 것은 정방형 분할의 변형이다. 물감 대신해 한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먹에 의한 검정 면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원래대로 라면 [이미지]와 [바탕]에 사용할 만한 것을 역전해서 사용한 의도도 있지 않았는가라고 여겨진다. [바탕]과[이미지]의 관계를 없애버림 , 그것을 하나로 함 , 그 시도가 지속되는 것이다. 그것을 종이에 의한 습작처럼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의연하고 어디까지 나 회화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10. 지속
그리고 1997년에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작품 군을 마주한다. 그것은 20년 달하는 것으로 그 안에서의 변화라기 보다는 변형이란 점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능선 위를 걷는다 라는 기본은 무너지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능선의 길은 물론 평평하지만 걷기 쉬운 것은 아니다. 내리막 도 있고 오르막도 있다. 제작 상 이전과 비교해 중요한 변화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필치(처럼 보이 는 것)]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화에서 아크릴물감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지지체는 변함없이 캔버스 이지만 안료가 수용성으로 변한 것이다. 이전의 작품에 있어서 [분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화면상의 수평 또는 수직의 선이 보이지만 뛰엄 뛰엄 보인다. 하지만 실은 [선]이 아니라 위의 흰색 층의 갈라진 틈 사이로 분명히 보이고, 혹은 엷게 보이는 것은 밑의 검정 층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밑의 검은 층은 먹으로 칠한 것이 아니라 한지를 먹으로 적셔 전면을 검정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먹, 그 위에는 흰색 아크릴물감인 것이다) 이 검정 한지가 캔버스 에 붙여져 있다. 붙여져 있지만 이 검은 한지는 지지체가 아닌 점을 주의해 야 한다. 한지를 먹에 적시더라도 그는 그것을 [그리는 것]과 등가하게 본다. 필치를 없애고 [그린 면]을 순수한 면으로 하기 위해서 이다. 그 화면의 위에 흰색 물감이 겹쳐져 있다. 위의 흰색 층은 아래의 검은 층과 일찍이 [3년간]과 다르게 균일하지도 평평하지도 않다. 하지만 화면 전체로 받아지는 느낌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1983년 먹으로 검은 한지위에 흰색한지를 옆으로 길게 띠처럼 잘라 붙인 수평의 분할 작품을 떠올린다면 이번에는 수직도 더해지고 흰색 한지가 흰 색 물감으로 바뀌고 , 한지를 잘라 붙이는 것이 그려지고 있다. 그것도 근접 해 보면 필치가 확실히 보인다. 저 [3년간]까지 필치를 없애려고 했던 발걸음이었다면 이번에는 필치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의 거리까지 떨어져 보면 필치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역으로 필치보다도 역으로 어느 종의 [움직임]을 부여하는 요소가 눈에 보인다. 시도가 느슨해지는 것보다는 극한화에 대한 하나의 폭으로 간주되어져야 할 것이다. 아래의 검정 층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바탕]이 아니라 그것의 위에 있는 흰색 층과 함께 회화가 된다. 관객 대부분이 [바탕]의 부활이라고 생각 될 수 도 있겠다. 관객이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전체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층은 먹으로 적셔진 완전한 순수화, 극한화 되어 [바탕]으로 되지 않는 것이 다. 더욱이 완전히 어둡게 전환되는 것에 의해 첫 번째로 위의 층은 정반대 의 화면 을 실현해 화면 전체에 더욱 두껍게 펼쳐지고 있다. 두 번째 로는 극한화는 모두 아래 층으로 떠맡게 됨으로 위에 층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11. 회화공간
위의 흰색 층이 종래대로 몇 층이라도 겹쳐져 있다. 저 [3년간]의 겹쳐 칠함은 각 층이 완전히 평평해지기 때문에 그 [펼침]은 그곳에서 완결된다. 조금은 관객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지 않을 엄격함이 있고 , 또한 그것이 멋 이 있었다. 다음은 화면의 이중구조이고 그곳의 [펼침]이 분명히 보인다. 관객은 긴장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그것을 맛보는 것이 가능하다. 관객이 그곳에 받아들이는 [해방감]하나의 [가능성] 내지 또 하나의 [긍정]의 감촉 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반드시 회화의 종래의 회화로 회기 하는 것으로써 만 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최명영의 극한의 바탕, 고개에서 종래의 회화를 극복해 버린다. 그것을 극복해서 좁은 가능성, 능선이라는 가능성의 길을 걷는 것이다. 좁은 지평 한정된 긍정의 지평 안에서 시도하고 있는 [회화]인 것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않된다. 그리는 최명영으로써는 균등히 평평하게 칠한다는 승려의 수행과 같은 제작 방식으로 폭을 넓혔다. 예를 들어 사경이라는 이라는 경문을 그대로 옮겨 적는 작업이라도 글씨 자체를 자기 나름으로 바꾸어 적는 것은 가능 하다. 결국은 경문을 대신해 자기의 문장으로 되는 일이 벌어 질수도 있다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한 일종의 여유가 균등히 칠해짐으로 자유롭게 보이는 것이다. 저[3년간]의 붓은 수평으로 움직였다면 다음은 수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사선이나 곡선이 아니고 전체의 구조도 느슨해 지는 것이 아니다. 종과 횡의 붓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할 지라도 화가의 신체가 현저히 자유롭게 되는 데에는 상상으로 어려운 일 이 아니다. 이 자유스러운 느낌 이 작품에 반영되고 넘쳐있다. 그리고 관객도 상호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괴로울 수 있는 능선의 오르막 내리막길을 도승에게 이끌려 관객도 느긋하게 산을 오르내린다. 느긋하게 오른다고 해도 긴장으로 가득 차있고 그렇게 편안한 길은 아니다. 건조가 빠른 아크릴 물감으로 변한 곳으로 겹쳐 칠해도 이전보다도 자유로움이 증가한다. 이전은 한 층을 칠 한다면 그것이 건조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번은 화면 전체를 보면서 어느 곳이라도 재량껏 자유롭게 붓을 놀릴 수 있는 것이다. 겹쳐 칠함이 종 방향 혹은 횡 방향이라도 언제라도 자유자제로 된 것이다. 때문에 저 [3년간] 보다는 제작의 방식과 결과도 보다 회화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 검정 한지라는 아래층은 [지지체]와[바탕]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회화]이고 그리고 그것이 있어야 이중구조가 가져다주는 [펼침]이 생겨나는 것은 이미 앞서 언급했었다. 지지체와 바탕이 아니면 무언가라면 그것은 그 자체의 회화 일부이면서 동시에 회화의 [기저]이기도 한 것이다.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위의 흰색 층과 마주하는 지평이라는 의미에서[기저]이다. 굳이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위에 흰색 층이 [실]이고 아래 검정 층이[허]이다. 그리고 물론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층의 색채, 자유로운 제작행위, 필치라는 [실]은 아래층 의 [허]에 의해 떠받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층의 [허]가 없다면 단순한 회화로 끝나버린다. 역으로 [실]로써 아래층의 그 자신과 정반대의 나타냄을 한 [허]라고 하는 위의 층에 짊어지지 않는다면 [허]로 보이는 [실]자신을 충실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회화공간] 이라는 것은 형태와 이야기 혹은 추상적 구성도 아니고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고 하면 [허]이자[실]이기도 한 하나의 [펼침]으로써 존재 할 수 밖에 없다. 최명영의 저[3년간] 작품에서 [허,실]이 하나로 된 구조에 의해 실현시킨 회화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허]와[실]을 밀착시켜나가면서 분리 되는 구조에 의해 실현시키고 있다. [허]와 [실]이 밀착하고 있기 때문 에 이 [펼침]은 결국 좁아진다고 할 수 있다. 마음과 감각과 신체의 위상만 으로 한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회화] 이 면서도 [새로운]회화인 것이다.
12, 빛
근대 이후 결국 현재의 회화는 어떠한 시도에 의한 것들 이었는가? 나는 과거의 [반복]도 물론 부정하지 않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거한 시도도 물론 부정하지 않는다. 단 전자에 대해서 비 서양지역에서는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되지만 서양이라는 보다 서구적이라는 점을 말하자면 [세련]일 것이다. [세련]의 힘은 우습게 볼만한 게 아니다. 또한 후자의 경우에서 신기함이란 점만 보자면 예술의 본질과는 먼 문제이기 때문에 서양의 있어서 비서양적지역에 있어서도 아직까진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다. 빌 비올라(Bill Viola)의 이전 말을 빌리자면 [비디오 테잎은 비디오아트 가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나는 회화라는 것은 그 한가지 독자의 공간을 생성하고 만들어 낼 만 한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의연히 그렇게 여겨진다. 모양이나 이야기가 아닌 회화를 매진하는 최명영도 이러한 시도를 하는 한 사람이다. [하나의 독자적인 공간] 그것을 [펼침]과 [공간]으로 불러왔지만 여기서 다른 말로 바꿔본다. 저 [3년간]의 작품에서는 여러 층의 겹쳐 칠함 으로 안에서 간직된[공간]이 신기하게 최상층의 화면으로 베어 나오면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1997년 이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작품이 두층으로 되면서 일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공간]은 확실히 그 사이에서 이전보다 보기 쉽게 나타난다. 그러한 [공간] 또는 [펼침]을 눈으로 보면서 2015년 9월의 서울의 그의 개인전에서 나의 뇌 뒤편에서 하나의 언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내면에서 되새겨 졌다. 바로 [빛]이라는 단어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회화 작품이지만 눈에 감지된 것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공간]내지 [펼침]이었다. 그때 갑자기 [빛]을 느꼈다. [빛]이 보였 다라는 것 보다는 [빛]과 같은 분위기를 느꼈던 것이다. 시선이 아래의 검은 층과 위의 흰색 층의 위상차에 포착되었던 바로 그 순간, 아래층으로 향한 층과 위에 층의 어느 쪽 양방향으로 시선이 동시에 끌려 이것이 무얼 까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빛]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펼침]은 바로 [빛의 펼침]이다. 혹은 [빛이라는 공간]이다. 혹은 [빛]에 의해 뒷받침된 [공간]이다. 현실의 물질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 감각, 신체성]이 현실 화 되고 공간화 되는 것을 유지시키는 것이 [빛]이다. 거의 그어진 선 정도의 폭밖에 없는 [검정] 부분이 눈에 강하게 작용 하는 것이 신비롭게 빠져들어 가 [그것]이 어두운 수면처럼 조용하게 눈에 보이지 않게 빛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 빛남은 깊이에서부터 온 것으로서 그 [반대편] 까지 펼침이 번지고 있다고 느꼈다. 펼쳐져 있는 것은 확실히 [공간], 현실적이라기 보다 감각적, 심적인 [공간]이라고 할 만 하고 나는 그처럼 느껴지는 현상의 뒷받침만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필경 [빛]의 감촉 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반대편이 아니라 이쪽의 흰색 층으로 보자면 겹쳐 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께는 가볍다. 그것은 칠한 방법이나 필치에 유래하는 것보다 는 아크릴 물감의 수용성 용제 때문일 것이다. 유성의 용제가 빛을 통과하지 않는 것에 비해 아크릴은 투과하기 때문이다. 그의 화면에는 빛은 표면 위의 층에서 이쪽 측, 바로 우리 앞쪽도 투과되어온다. 즉 몇 겹 겹쳐 칠함 을 넘어서고 있다. 빛이 없다면 세계는 눈에 들어올 수 없다. 인간으로써 빛은 애초부터 부여된 것으로 보통은 염두 하지 않고 있다. 염두 하지 안은 채 인간은 빛에 대한 감수성이 둔화되었다. 무언가 눈에 보일 때 인간은 보이는 세계만을 감지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빛 그 자체는 느끼지 않는다. 회화는 그러한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있다해야 할 것이다. 물론 회화는 그 때문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회화가 그 역할을 계속 끝내 버리는 지금, 회화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 지금, 예를 들어 최명영이 회화의 종래 의미가 아닌 [펼침]을 요구하는 지금, 화가 자신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빛] 으로 부터 [회화]로 찾아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빛을 그리고 있거나 빛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명영의 회화는 빛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불러들였던 빛이 그의 회화공간의[바탕]이 되고 있다. 산의 능선위에 서 있을 때 빛이 그 사이로 부터 비춰져오는 모습을 나는 상상한다. 그러한 능선 위를 계속 오르고 지속할 수 있는 것, 그러한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 거기가 산의 정상이라고 하진 않지만 그것은 매우 드물고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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