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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素材들에 접촉하는 行爲의 다스림」 1982

「단조로움」은 일견 나의 작업에 가장 적절히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텅빈듯한 사각(四角)의 캔버스, 전면을 반복하여 도포(塗布)하는 행위, 튀어나옴이 없이 균질(均質)하게 펑퍼짐한 질료(質料), 상충(相衝)작용이 없는 무명(無名)의 중성적인 색조(色租)등등이 그러한 듯 하고, 더 나아가 이를 마주하는 제3자의 눈에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실제에 있어서 이와 같이 조건(條件)지어진 사각(四角)위의 반복작업은 어쩌면 생애에 걸쳐 일상적 삶의 단편이나 온 갓 기억과 상념들을 묻어가면서 그 추이(推移)에 따라 존재의 지평을 확인해 보려는 지극히 단조롭고 평범한 일에 불과하겠기에 말이다.

한 작가가 그의 세계에 이르는 데에는 각기 그 나름의 독자적인 수단이 있게 마련이고 그 방법론은 그 작품의 구조적 특질을 규명하는 핵심요건이 되고있다.

방법론을 통한 구조에의 접근은 특히 70년대 우리 현대미술의 한 특징적인 양상이기도 하려니와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법상의 제시나 방법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것은 일상적 리얼리티의 범람속에 맞닥드려서 체득, 환기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개연성의 언어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 수단은 작품의 생성과정 속에서 대상과 주체, 물질과 정신의 이완(弛緩)없이 실현되야할 정합성(整合性)의 의미를 띄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나의 작업을 실현하는 방법을 한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그것은 「주어진 소재(매체)들에 접촉(반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으로서의 행위의 다스림」으로 표명할 수 있겠거니와 양자(兩者)는 상호침투, 용해되어 텅 빈 공간속에 투명한 존재성을 들어내게 함으로써 절대조건으로서의 평면의 본질을 규명하려는데 있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평면위에 평면적인 도포(塗布)는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평론가 이일씨는 나의 80년대 개인전에 부쳐 「조건지어진 평면」 제하의 서문에서 나의 기본적인 평면에로의 접근동기를 언급하는 가운데 「왜냐하면 그는 이른바 한국의 엥포르멜 열풍의 세례를 받지 않고, 처음부터 기하학적 질서, 심메트리에의 지향(志向)을 지닌 화가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자기환원적(自己還元的)이요, 시쳇말로써 「미니멀적」인 성향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금욕적이고 반 인류전의 무형무색의 세계로 귀착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후략)」고 기술하고 있는바 이른바 모노크롬류의 표현은 단순한 무형, 무색에 그치는것이 아니며 또, 그것이 결과하는 회화의 평면성도 단순한 평평함을 의미하는것이 아니여서 평면은 일종의 구조화된 공간, 즉 모든 공간을 포용하는 공간을 스스로 속에 지니고 있는 평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평면조건」이라는 명제는 이를테면 나에게 있어서의 회화 개념과 그 실제는 예술과 생활 전반이 자연스럽게 질서지워지고 조건지워져있는 상태로써 수용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의 틀」을 상정함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며 단지 현상및 상황에 대하여 가급적 유연하게 적응하려 함을 말한다.

의사평면(疑似平面)으로 설정된 장속에 균질한 접촉감(接觸感)의 질료나 규정지을 수 없는 색조의 중첩된 자리잡음은 그 행위의 반복 틈바구니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의 징후를 잉태하게된다.

이와 같은 변화의 개연성은 작업과정 속에서 행위가 가해지는 순간의 감정의 기복이라던지, 신체적인 호흡의 강약, 질료 및 도구의 선택여하 등 제반여건과 상황에 따라 균제(均齊)와 통어(統御)로써 변용, 수렴되며 그 속에서 나는 투명한 생성구조와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그 무표정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균질하고 단일한 평면은 풍성하고 탄력있는 감성으로 물들여 질것이며 이 무한에 대한 감성은 화면의 물질적, 시각적 틀을 넘어 무한공간에 그 현존을 누릴 것 이다.

여기에서 나는 나의 단조로운 행위, 소재, 색채, 표면감은 가장 기본적인 단위와 상태로부터 출발하여 나의 정신구역을 통과할 때 비로소 무한의 항해에 청명하게 열려진 위상의 현장으로 승화될 것으로 믿는다.

 

1982. 崔 明 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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