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영 작업의 준비물은 물감과 몇 가지 도구 그리고 캔버스뿐이고 그것은 작업의 결과 또는 완성도와는 깊은 관계가 없다. 그리고 그 재료가 최명영을 통하여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로 변화하는 과정은 이름 지을 수 밖에 없는 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그의 작업은 일상의 즐거움과 괴로움, 소유와 버림이 교차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건강, 불편함, 감정의 진폭, 육체적인 기력의 변화 속에서 발휘되는 의지와 관계가 있다. 시기마다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1975년 작업에서는 캔버스에 지문을, 1980년대에는 한지에 송곳, 그리고 캔버스에 롤러를,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는 캔버스에 브러쉬를 사용하여 각기 다른 평면의 조건들을 만들고 있다. 1963년 오리진 창립전부터 지금까지 50여년 넘게 비슷한 작업을 반복해오고 있지만 변화 없는 모노톤의 화면뿐이다. 그곳에는 사건도, 소음도 없는 그만의 방식으로 진행되어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모노톤의 화면만 제공할 뿐이다. 고행처럼, 수도자처럼, 그가 정해놓은 듯한 규칙을 스스로 따라서, 그의 작업은 일상의 그림자가 되었다.최명영은 재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또 다른 자아를 만나기 위해 특정한 비례로서 <평면조건>을 만들고 있다. 이때 그는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몸의 리듬에, 순간의 치계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동시에 일상의 섬세한 정황들이 그만의 독특한 반복성을 통해 외부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사유하는 힘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실제의 삶과 현재의 삶의 공존을 메모하는 ‘수직‧수평의 미묘한 쓰기 劃’로, 이는 인간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예술적 방법이며 어떤 주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주체를 억압하는 것도 아닌, 사유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 삶 속에서 항상 변화하는 주제, 많은 문제들, 각기 다른 취향들을 ‘특정한 장소’로 유도하면서 해석이 아닌 반향을 물러일으키고 있다. 이때 그는 쓰기와 레이어 방법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그 쓰기의 간결함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조형적 형식이며 그의 몸을 자연에 통합하고 조율하면서 행간이 벗는 비이미지적 리듬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심오하거나 담론의 피상적인 절단에서 벗어난 수행의 차원이며 그의 삶 전체와 고독 속에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표의 문자가 되었다. 따라서 그의 쓰기가 만들어내는 리듬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이루어진 삶의 증거가 되고 있으며, 하나의 여백이거나 공간이라기보다 더욱 감각적인 호흡이거나 바람 같은 의미로 공간과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떨림과 같다. 그의 쓰기는 분석할 수 없는 만남이나 스침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중립의 in neutral 연속성이다.최명영의 작업에는 계절에 대한 암시가 있다. 풍토로서 하나의 향기인 동시에, 자연에 대한 예민한 징조로서 화면 안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 그 함축에서 계절에 대한 묘사는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요소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언어적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그 계절감을 느끼게하는 것은, 아주 적은 요소와 물物자체로서의 공기층이다. 이때의 계절감은 단순한 일기로서의 날씨가 아니라 인간의본질과도 같은 것이며 그의 삶과 닮아있다.이처럼 그의 작업은 삶의 새로운 형식에 이르는 길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물리학자가 매일 매일의 대기 상태를 알기 위해 실험하듯이 그의 작업은 그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그의 복수형이며 그것은 유동적인 선들의 직조로, 공간과 시간들의 불연속적인 망을 이루고 있다.최명영의 작업은 독특한 개별화로, 뉘앙스를 중요시한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획일화에 대한 거부이며 1963년 오리진 창립 전에 출품했던 black monochrome painting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하나의 자율적인 언어를 획득하기 위한 자존적 행위이며, 변화하는 것을 예민하게 담아내는 뉘앙스로, 그를 둘러싸고 억압하는 것들에 대하여 아무도 파괴하지 못하는 장소로 안내하는 행위이다. 그곳은 잡다한 언어활동이 정지하고 더 이상의 해석이나 설명이 없는 순수한 상태이며, 아무런 의미를 더하지 않는 찰나의 시간으로 그의 수평‧수직 쓰기와 일상이 공존한다. 그것은 움직임을 머금은 부동성으로 어떤 한 장면을 위한 파편이 아닌 동시성이며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쓰기는 잠시 멈춤이라는 ‘상태의 보존’으로, 하나이자 전체이며 ‘정지이자 순간’이라는 부동성이다.최명영의 작업은 형식이 단순하고 격언적이지도 않고 관능적이지도 않다. 허구가 아니며 지어내지도 않고 자기 안에서 일어난 감정의 화학작용에 의해 발생했다. 그 과정에 우연성이라는 것이 개입하는데, 그것은 그에게 더욱 진실하고 성실해지는 요소로 작용되고 있으며 쓰기의 레이어 과정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무 無 의 경지이다. 그의 ‘몸의 드림’에 의해서 대상이나 이미지나 모티브는 증발하여 상황 속으로 흡수되고 잠시 정지하여 살아있는 현실을 가리키는 파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은 고정되지 않은 파편으로서의 수직‧수평쓰기, 일상을 직조하는 레이어과정, 잠시 정지한 순간에 대한 주목이다. 이때 일반적인 색은 차단되고 규정할 수 없는 모노톤만이 존재하며, 무성영화에서 수많은 장면이 지나간 후 명멸하는 모노톤처럼, 최명영의 무색 無色은 색이 없는 것이 아닌 그 무엇으로, 미묘함이다. 차단된, 보일 듯 말듯한, 보이지 않고 말이없는, 순수한 무색이다. 가장 간단한 쓰기와 가장 복잡한 감정의 교차가 잠시 정지하여 일상을 본질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이때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것을 가장 비 인간적인 물질과 결합하는 미묘한 경지를 만나게 되며, 이 쓰기의 깨달음은 몸의 드림이 더해져 강력한 현재성이 되었다.
김용대 金容代
1987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수석 curator로서 ‘한국미학에 근거한 현대미술전시’를 기획하였다. 부산시립미술관 관장(2004-2006)과 대구시립미술관 초대관장(2010-2012)을 역임하고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전시’를 독립적으로 curating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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