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明永 作品展에 붙여-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崔明永의 작품은, 서로 대비되는 存在方式으로서 받아들여진 物質性의 근원적 實在의 추구라는 테마로 일관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對比는 말하자면 物質의 感覺的 現存과 그 現存에 오히려 가리워지고 있는 헐벗은, 또는 非物質的인 實體와의 사이에 존재하며 실상 그의 작품세계는 모든 事物이 주어진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의 變容의 蓋然性을 항상 지니고 있다는 인식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變容은 단순한 物理作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또한 단순한 인위적 現象으로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작가가 이에 개입하는 것이다. 어떠한 방식의 개입이든 그것을 우리는 작가의 <行爲> - 그것도 가장 넓은 의미의 행위라고 부를 수 이겠거니와 그 행위를 하나의 作用的 媒体로서 작품의 실질적인 媒体가 되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崔明永은 두 가지 유형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 하나는 畵幅위에 單一色으로 칠해진 규칙적인 여러 층의 色帶를 손가락 바닥으로 불규칙하게 뭉개는 작업이요, 그 또 하나는 無地의 캔버스에다 역시 손가락 바닥으로 넓직한 指印을 균등하게 찍어 뭉개는 작업으로 그 결과 그 指印이 캔버스의 實体 자체가 된다는 작업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는 서로 相反되는 것 같은 이 과정은 필경 동일한 뿌리 - 對比개념이라고 하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최근의 聯作이전에 이미 同一 이미지 내지는 형태를 그들의 物質的 固有性과 그 殘像의 對比로서 同一화면에 정착시키기를 시도했고 또는 畵幅에 부착된 事物의 一部를 도려내어 도려진 빈 부분과 도려낸 부분을 對比시킴으로서 오히려 빈 형태의 物質性을 환기시켰다. 또 때로 그는 화폭의 單色畵面의 모서리 부분을 샌드페이퍼로 문질러 형태를 정착시킴으로서 형태와 색채를 바탕으로 同化시켜 보기도 했다. 이 모든 작업이 對比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앞서도 지적한 바이나, 現實을 우선 하나의 對比現象으로 파악한 연 후 그에게 남은 과제는 이를테면 그 現像을 檢證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檢證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이 바로 <置換>의 세계요 그것도 還元的 置換의 세계이다.
万一에 그가 미리 칠해진 色帶를 뭉갰다고 하면 그것은 色彩라고 하는 물질적 상태를 또 다른 상태 - 어느 것으로도 還元될 수 없는 狀態로 치환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그가 無地의 캔버스를 균등한 指印으로 뒤덮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캔버스라는 쉬포르의 物質的 現存性을 그 행위를 통해 「그것이 아닌」 상태로 치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는 現實의 檢證에서 그 置換으로 옮겨가며 다시 그 치환은 世界의 잠재적 顯存性으로 환원되어 가는 것이다.
1976. 6
李 逸 (美術評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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