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겪는 과정은 외부적인 충족조건이 필요하다.” – 루드빅 비트겐슈타인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의 선구적인 이론가 마이클 프라이드가 유행시킨 표현을 빌리자면, 최명영은 “의미가 곧 형태인 정자正字추구자literalist”이다. 이승조와 서승원과 더불어, 최 작가는 수십년 동안 기하학 추상화 작업을 해온 한국의 가장두드러진 활동을 해온 작가 중 한 명이다. 4·19를 겪은 세대의 일원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를 맞서고자 했던 학생 시위대) 또 1960년대에는 ORIGIN 미술인 협회의 대표로, 그는 삼십년 동안 그의 모교인 홍익대학교의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화가로서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회화 표면의 한계와 특성을 탐구하는데 바친 것으로 따졌을 때, <자연의 색채 The Color of Nature>에 수록된 작가 중 가장 이론적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재료를 가식없이 그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최 작가의 작품은 서양화의 전통을 따르는 미니멀리즘답게, 주제로서의 대상과 착시현상, 원근법과 같은 공간감이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분류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의 회화는 담고 있는 내용 - 색상과 선 -으로 보아서는 미니멀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들은 효과에 있어서는 맥시멀하다. 그는 캔버스 위에 검은 바탕을 칠하고나서, 검은 바탕색을 하얀 물감(또는 파랑과 검정, 아니면 검정과 빨강, 또는 흰색과 검정색)으로, 좁은 롤러를 사용하여 낱낱의 긴 선을 겹겹이 덮는다. 그러나 그는 바탕색을 완전히 뒤덮지는 않는다; 그는 무한하게 느껴지는 숫자와 길이의 수평과 수직선을 미세한 풍성함으로 보이게 남겨둔다. 얼핏 보기에는 흰 바탕 위에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은 흰색 물감 밑에 감춰진 검정 바탕이 드러난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그는 “내 작품을 궁극적으로 평면적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조건사항”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충족조건이나 절제를 의미하며, 이는 그의 내면 작업을 이룩하기 위한 외부적인 척도이다. 예를 들어, 그는 흔히 그의 작품의 크기에 물리적인 한계를 두어 화폭의 크기가 “중심”의 확장에 머물도록 하고, 대신 자신의 화법이 서양화의 모노크롬 회화의 “전면적인” 스타일 특성에 걸맞게 화면 전체를 차지하게끔 허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 결과는 부분적으로 눈에 띄고, 부분적으로는 파묻히고 숨겨지는 정교한 격자 작업이다. 1980년대 초에서 중반 사이에는, 바탕색이 거의 다 윗부분의 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숨겨진 바탕은 간간이 보일 듯 말 듯 하여, 마치 심한 안개나 구름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었다. 그의 1986년작 13-86-105 속의 여러 선은 희미하게 인지되는 덧셈과 뺄샘 기호를 남기는데, 이러한 수학적 상징은 작가의 지성적인 취향을 암시한다. 작가의 여러 후속 작품에서는, 상층부와 밑의 층들 간의 대화가 더욱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여러 선이 더욱 굵어지고, 강건해지며, 주변의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 실제로, 그 선들의 다양한 밀도가 공간감을 더한다. 이 수평-수직의 선들은 작품의 면 위에 밀고 당기는 듯한 긴장감을 생성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런 생동감으로 연출되는 형상은 마치 창공에서 미로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시선은 자동적으로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상하로 또는 그 반대로, 나아갈 경로를 탐색하며, 격렬한 움직임의 느낌을 고조시키는데, 실제 캔버스의 크기와 차원을 넘어 모든 방향으로 퍼져 나가는 광대한 미로의 한 켠을 작가가 화폭에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색채는 흑과 백이 지배적이다. 평론가 이일은 이를 “작품의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해석한다. 흑과 백은 그의 한 발짝 물러선 듯하면서 지성적인 엄격함에 확실히 제격인 색상이며, 또한 그의 작품이 스스로의 정체감이 인식되게끔 지속하는 능력의 표상인 동시에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한다.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전통 회화의 확장에 관한 것이다. 유화와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사용하거나, 한지 위에 먹을 사용하여, 안료의 여러 층을 가지고 자신만의 흔적을 만든다. 모든 전통 화가들이 다양한 방법과 질감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즐기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최 화백과 같이 숙련되고 조예가 깊은 작가는 작품의 표면 위에 “덩어리body”를 구성하거나 여러 층의 물감으로 짜임새를 구축하여 각기 자신만의 독자적인 표시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 덩어리body는 작가와 그의 재료 사이의 대화이며, 화폭의 주를 이루는 덩어리body를 음미하는 것은 감상자로 하여금 그 특정 화가의 방법론을 들여다 보게 하는 관점이 될 수 있다. 최 화백의 절제되고 조절된 화법은 가늘고 섬세한 표면을 이루어, 그의 색채를 더욱 정제되고 미묘하게 구사한다. 근래들어, 그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바탕색을 포함시키며, 흑과 백과 어우러지게 하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이 본인의 “일상과 감수성”을 드러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였고, 그의 두드러지고 우아한 색조에 여러 원색이 불어넣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감상자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나는 작품 속에, 화면의 궁극적인 상태인 균일한 수평면을 이루도록, 나의 화법에 여러 충족조건을 지운다. – - 최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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