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미술은 1960년대 말부터 징후를 보인 예술의 본질적 물음에 대한 움직임이 다양한 시각과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현실화된 시기이다. 이 시기 예술적 개념을 탐구하던 미술계 흐름은 전위적 방법을 통해 미술의 본질을 되묻고자 했다. 특히 회화는 전통적 개념이 무너지면서, 공간적 환영을 포기하고, 회화본질이 평면임을 인정하는 ‘평면성의 원리’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현대미술에서 회화가 형태, 일루전, 이미지 표현에서 떠나 새로운 형식과 이론을 무기로 회화영역을 확대시킨 사례들을 통해 구체화된 현상이다. 1970년대를 접점으로 한국화단에 등장한 ‘오리진’, ‘A.G’, ‘S.T그룹’, ‘에스프리’ 등 젊은 세대 소그룹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경향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전개는 미술사적 가치와 평가에 새로운 미학적 시각을 접목하며, 한국 미의식 본성과 아이덴티티 정립을 위한 담론을 이끌었다. 이 변화를 주도한 위치에 있었던 많은 작가 중 최명영(崔明永:1941~)은 당시 모노크롬회화가 주목했던 이미지 부정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 회화적 표현에 의문을 던진 화가이다. 그는 물성의 체득화 과정을 통해 회화가 지닐 수 있는 평면적 존재가치를 탐구하며, 궁극적으로 평면화를 위한 ‘평면조건’을 찾아 수십 년 동안 일관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이 점에서 스스로 미적 관점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는 자기탐구와 그 흔적들을 집적시켜온 최명영의 평면회화는 단순히 한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기록하는 의미 이상을 지닌다. 그 이유는 70년대 한국미술계의 주류였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통해 평면 회화를 추구했던 경향을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명영 작품세계와 작가정신을 들여다보며, 그가 탐구해온 ‘평면조건’의 완전성을 위한 최소 조건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기하학적 시각변용과 질료성 탐구-
최명영의 작가로서 출발점은 회화의 비실재성을 발견하고, 질료와 기하학적 조화를 탐구한 60년대 중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대학시절, 회화에서 재현이 지닌 리얼리티의 한계와 모순에서 회화의 비실재성을 자각했다. 그리고 사물의 기하학적 패턴을 추구하는 작품으로부터 회화가 구체적 형태의 재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도출해냈다. 이는 당시 활동했던 주변 작가들의 영향 속에서 수용과 변용 과정을 거치며 실험적인 작품으로 나타난다.「청년작가연립전」의 '오리진'에 참여하면서 선보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속한다. <도판1>은 기하학적 추상작업의 대표작품으로 자연의 대상이나 이미지에서 벗어난 형태로서 비정형적 추상이 지닌 감성적 회화와 차별을 둔 것에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성과 논리적 사고로서 기하학 구조를 이해하고, 수학적 비례에 기초한 공간 분할로 균형과 질서를 지닌 화면구성을 추구하였다. 특히 화면의 붉은색, 황색, 청색 원색들과 부드러운 곡선은 무심한 기하학적 화면에 부여한 생명적 색과 선으로 화면의 조화로움을 이끌며, 평면의 적막함과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준다.
이 시기 그의 작업은 서구 미술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기하학적 추상미술 선구자인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1872~1944),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1878~1935)작품들은 최영명이 근본적인 독자성을 획득하고 정체성을 찾기 전까지 필연적으로 수용했던 경향의 작품들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대상을 표상하지 않고 물감 자체에 관심을 가진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원리와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은 당시 한국화단이 맞이한 새로운 서구물결 속에서 기하학적 추상과 모더니즘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최명영이 기하학적 탐구에서 물질의 고유한 성질, 즉 물성에 대한 근본적 탐구로 전환을 시도한 것은 아방가르드 협회의 핵심구성원으로 ‘A․G 展’ 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우선, 1970~71년에 <변질(變質)>이라는 명제로 선보인 작품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드럼을 땅에 묻거나, 각목에 검은 천을 씌워 벽에 기대둔 채 또 다른 물질과의 관계성을 탐구한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변질(變質)>은 인간행위로 재료의 본성이 변질되는 과정을 실체적 물질제시를 통해 인식하는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평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고민이 ‘오브제’라는 물체의 직접 표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오브제의 제시는 일찍이 레디메이드가 예술적 범위에 들어오면서 재현이 가질 수 없는 리얼리티, 즉 물체 자체에 환원하는 자기 지시성의 선구적 표현이다.
그러나 <변신>작품의 결과적 성과는 물질이 변하는 과정이 평면회화에서도 가능할 수 있음을 발견한 작가적 성찰이다. 실제 “평면을 칠하고 닦고 하는 반복의 과정에서 변해가는 추이나 정신적인 무엇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다”는 작가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변질> 이후, 최명영의 질료적 특성탐구가 다시 평면으로 회귀한 것은 1974년부터이다. 이 시기 <등식>시리즈에서는 붓이나 롤러가 아닌 손을 직접 사용해 물질의 속성을 탐구했다. 손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문지르는 신체의 반복접촉은 정신적으로 물질속성에 닿고자한 작가 표명의지이다. 이때 물질은 시각적 현상이 아닌 물질자체가 가진 본성에 환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자기 지시적이다. 이는 물감으로 표현되는 형상적 이미지보다 물감자체의 질료감에 천착해가는 행위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후일 최명영이 추구한 물질의 정신적 환원을 향한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평면화의 최소 조건들-
최명영의 ‘평면조건’시리즈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계속되는 화업의 실질적 개념이다. ‘평면조건’시리즈는 그가 평면화를 위해 많은 사유시간을 축적한 결과 얻은 경험이자 정신적 산물이다. “나의 작품 속에, 화면이 궁극적인 상태인 균일한 수평면을 이루도록, 나의 화법에 여러 충족조건을 지운다.”라고 언급한 말에서 평면을 위한 작가적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그 사유는 76년 첫 개인전과 ‘에꼴 드 서울展’(1976~1999)에 출품한 이후 평면성과 단색, 두 조건만을 가지고 물감의 속성을 추구했던 시기로부터 ‘한계내외’, ‘단위면적’, ‘전개면적’시리즈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특히 그는 물질과 비물질의 접점지대를 찾고, 동시에 평면조건을 위한 최소단위들의 물질적 탐구에 관심을 보였다. 이 결과들이 1980년대 ‘평면조건’으로 제명한 작품들이 발표되면서 평면조건은 최명영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상징 언어처럼 떠올랐다. 그는 ‘평면조건’의 완전성을 추구하며, 바탕위에 물질을 반복적으로 도포하거나 중첩하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물질의 정신적 환원을 탐구했다.
최명영의 평면을 위한 최소 조건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소통적 언어로 작용한다. 「평면조건05-20」(2001)에서 일차적으로 인지되는 ‘평면조건’의 최소 단위는 수평․수직의 선과 면이다. 겹겹이 쌓인 물감 속에 수평․수직 선들이 마치 숨겨진 형질의 본성을 드러내듯 무수한 반복으로 펼쳐져 있다. 일정한 거리로부터 인지되는 화면의 선들은 물감을 중첩하는 과정에서 남은 최소한의 여백처럼 보인다. 인지되는 수평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선이다. 선은 교차하거나 맞닿아 있지 않지만, 자연의 질서처럼 보이지 않은 바탕에 순환적 시간이 근원을 이루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 선들 사이로 형성된 수평면은 다시금 선들을 연결하는 연속적 공간이자 매개체로 인식된다. 한편, 수직선은 또 다른 움직임을 생성시키는 상승과 동기적 힘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표현된 수평․수직 배열은 자연 순리처럼 생존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마치 백색 면들 속에 드러나는 흑색 바탕이 물질의 근원이자 생명의 본질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음이다.
‘평면조건’을 위한 또 하나 최소단위는 색채이다. 최명영의 작품색채는 극히 제한적이며, 특별히 흑과 백이 평면전체를 지배하는 작품이 많다. 여기서 색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화면을 차지하는 흑과 백이 상대적 색을 지배하거나 부정하기보다 상대 색의 본질을 인정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면조건05-20」(2005)작품의 백색이 화면을 지배한 듯하지만, 밑바탕의 흑색 선과 비교할 때, 하나의 색이 독자적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 다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평면조건이 지닌 절제와 질서의 힘이다. 이러한 색채의 중립성은 작품에서 흑과 백이 가장 이상적인 색의 조화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1980년 중반부터 ‘평면조건’에 가는 붓자국으로 표현한 색이 등장하거나「평면조건05-28」「평면조건05-30」처럼 한층 자유롭고 강렬한 색채가 등장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최명영의 작품색채는 중립적이며, 중성적인 무채색으로 대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최명영 작품은 수평․수직의 선과 면, 무채색의 중립적 색채 등 평면화의 최소 조건들이 조화로운 질서와 절제로써 균질한 집합체를 이루며, 최명영만의 평면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평면조건80-20」은 최명영 작품세계의 이해를 위해 언급했던 ‘질료성 탐구’와 ‘평면화의 최소단위들’ 이외에 작가의 정신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간의 간극을 두고 바라볼수록 무형의 이미지에서 오는 무한한 공간감과 질료에서 느껴지는 물성이 직관적으로 감지된다. 동시에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듯 화면을 덮고 있는 검은 공간들은 비어있는 듯 꽉 차있고, 꽉 찬 듯 비어있다. 이러한 인상은 최명영 작품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그가 펼쳐온 오브제의 도입이나 ‘평면조건’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추구한 물질의 이중성과 상통한다. 마치, 백색 면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흑색 바탕 선이 전체적으로 차지하는 백색 바탕 속으로 흡수될듯 말듯하다, 오히려 백색면들 사이에서 서서히 본질을 드러내듯 한다. 이러한 표현은 물질과 물질, 예컨대 한지와 먹이 근본적으로 섞임으로써 나타나는 이중적 화합이다. 이때, 한지의 선택은 단순히 화면 바탕으로서 의미를 넘어 한지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 밀착한 정신적 발현이기도 하다. 한지가 우리의 정신과 전통을 잇고, 한국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물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동시대 작가는 물론 많은 작품에 활용되었던 만큼 그 사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먹의 사용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명영 작품에 사용된 한지와 먹은 무엇보다 두 재료가 갖는 물질적 속성의 조화로운 만남에 있다. 한지에 스며드는 무한한 깊이감은 먹이 지닌 담묵의 세계이며, 먹의 깊은 맛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한지만의 속성이다. 두 물질은 물질이 스며들고, 흡수되는 만남에서 서로의 존재성을 확인한다. 여기에는 두 재료의 물질적 만남을 정신화 하려는 작가행위도 포함되어있다.
한편, ‘평면조건’시리즈를 통한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작가적 경계선은 물질적 탐구과정에서 또 다른 공간적 연속성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롤러로 화면 가득 쌓인 물감을 천천히 균일하게 캔버스 밖으로 밀어낼 때 캔버스가 끝나는 경계마다 그대로 남겨진 불규칙한 물감 덩어리들은 캔버스가 끝이 아닌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 시작점임을 암시한다. 이는 미완의 세계에 있는 광대한 공간일부를 그대로 떼어낸 자국처럼 남겨진 물질적 흔적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이다. 이 표현들은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명체의 근원이며, 동시에 또 다른 공간속 평면을 사방으로 연결하는 시작점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최명영은 어떠한 내러티브도 배제한 채 평면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하여, 궁극적으로 공간과 합일되는 평면으로서 그 존재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현실화한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토록 오랜 시간 그를 회화의 평면성에 몰입하게 한 실질적 힘은 물성의 체득과정에서 경험한 물질의 정신적 환원이었고, 그 정신적 환원은 평면조건들의 상호 조화와 절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최명영 작품세계에 담긴 물질간의 적절한 관계는 우리의 지성과 작가의 지성이 상호 이해할 수 있는 물질의 근원적 형질에 다가선 작품의 진정성에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탐험가와 같은 존재다. 실재로 소우주를 탐험하는 탐험가이고자 한다.”던 최명영의 고백처럼, 그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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