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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영 論 1982

최명영(崔明永), 그는 평면작가(平面作家)이다.

일반적으로 “회화”라고 하면 곧바로 평면작업을 의미하거늘 굳이 최명영만을 평면작가라고 전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최명영의 작업이 단순히 평면위에 「무엇」을 그린다거나 표현함에 있지 않고 「무엇」을 그리거나 표현하는 장소(場所), 또는 조건(條件)으로서의 평면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규명하려 한다기 보담 조건(條件=平面)의 실체에 접근하려 한다는 표현이 옳겠다.

실제로 최명영은 평면의 실체(實體)를 의문하고 하나의 작업을 통해 그 실체의 구체화시킴으로써 방법론적인 독자성을 얻고 있다.

그의 방법론적인 독자성이란 우선 모노크로미즘(monochromism)에 있다.

물론 모노크로미즘이란 「이브 클라인」이후 수 많은 작가들에 이해 탐색되어진 - 결코 새롭다고 할 수 없는 - 방법이지만, 최명영에 의해 나타나는 단색(單色=모노크로미즘)은 「이미지의 부정(不定)」이란 종래의 개념과는 다른 각도에서 논의 되어야 할 성질을 띄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엇」의 표현이라는 기존 회화의 목적성을 논외(論外)한, 즉 「무엇」의 표현에 앞선 절대조건(絶對條件)으로서의 평면이 과연 무엇인가부터 알아야겠다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 최명영의 작업이다.

그러나 그 물음의 답(答)을 얻는데 목적성이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여기서 「평면에의 의문」이란 그 자신의 작업 과정(過程)에서 볼 때 하나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의 방법적인 핵심은 평면의 실체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 실체를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개념(槪念)속에 노출시켜 그 가능성을 모색해 보자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회화 이전의 문제가 회화로서, 또는 현대미술로서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평면이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얻고, 마침내 회화(繪畵)의 장소(場所)로서 확인될 수 있다면 최명영의 작업은 일단락될 것이다. 물론 그의 작업 자체가 회화성(繪畫性)을 얻게 된다는 일과는 무관하다.

이 시대의 미술에 있어서 기존 회화의 개념은 사실상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최명영이 선택한 평면이란 「무엇」을 표현하는 단순평면(單順平面)에 머물지 않고, 공간 속에 놓이는 입체평면(立體平面)으로 남게 된다. 왜냐하면 무엇이 표현되는 장소(場所), 즉 물질성(物質性)을 시사하는 바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물질이란 이미 공간을 가정한 하나의 형체가치(形體價値)를 전제함으로써 회화가 존재케 되는 곳으로서의 평면은 이미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미 여기에 이르러서는 「무엇」을 표현한다는 기존 회화방식(繪畵方式)에선 까마득히 멀어지게 됨을 실감할 따름이다.

또한 여기에서 모노크로미즘의 방법적 도입이 명확해진다. 그에게 있어 단색(單色)이란 하나의 방법론(方法論)에 이르기 위한 소재로서 존재할 뿐이다. 평면이라는 실체에 접근함에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必要條件)으로서 선택된 것이 바로 단색이 지닌 의미성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대하고 얼핏 단색으로만 파악하려 드는데 어쩌면 색깔의 무의미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단색의 선택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 있어서 색깔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품의 표면(表面)에 나타난 사실 정도이고 그 이외에 별다른 뜻이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발표되고 있는 “평면조건(平面條件)”이란 명제를 가진 일련의 단색(單色) 작품들을 보면 얼핏 하나의 절망(絶望) 혹은 적막(寂寞)과 만났다는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이렇듯 사방(四方)이 가로막힌 듯한 사고(思考)의 부자유(不自由)를 강요당한다는 미묘(微妙)한 절망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존 미의식(美意識)에 철저히 길들여진 사람일수록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의 당혹감은 더욱 크게 마련이다.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像)는 고사하고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하는가 하는 이해(理解)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회화를 위한 캔버스(四角틀)가 마련되었고 거기엔 또 물감이 얹혀져 있음으로써 일반적인 회화의 형식을 고루 갖춘 듯 싶으나 이러한 회화적인 요소(要素)들이 사실상 최명여의 작품을 더욱 비회화적(非繪畵的)이게 만들고 있다.

그의 연작 “평면조건”을 보면 기존 회화의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얻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절망감 혹은 적막」과 같은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분위기는 작품의 진실을 가리는 하나의 안개에 불과하다는 시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은 채 그냥 쳐다보는 것으로써 작품 스스로 공감(共感)의 돌파구(突破口)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의 만남 후에는 문득 투명(透明)한 세계가 열리게 된다. 사방(四方)이 가로막힌 벽(壁)에 갇힌 듯한 부자유(不自由) 속에서 고개를 쳐들어 문득 하늘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사고(思考)의 개안(開眼)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이미지가 없기에 더욱 뚜렷한 심상(心像)을 찾아볼 수 있다는 비논리성(非論理性)이 바로 작품의 골격이자 방법적인 비밀이다.

캔버스라는 주어진 틀(長方形, 正四角, 直四角) 위에 울트라마린, 마블오렌지, 블랙, 혹은 붉은 색 따위의 물감을 놓고 나이프, 붓, 로울러 등으로 균질(均質)하게 화면(畵面)을 덮어가면서 화폭(畵幅)이라는 한계선(限界線)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가 작업의 전부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행위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10여 차례 이상이나 반복해서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이 때 최명영에 의해 선택된 물감은 다만 질료(質料)로서 존재할 뿐 이미지의 구축(構築)에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 캔버스를 덮어버리는 질료로서의 물감은 색깔이라는 본래의 가능을 상실한 채 전혀 생소한 물질성(物質性)만을 확인시킬 따름이다.

캔버스 자체를 덮어버리는 작업과정에서 일정한 한 가지 색(色)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느 경우엔 색층(色層)을 형성했다고 할 만큼 색깔의 선택이 자유롭다. 이처럼 색깔의 선택이 자유롭다는 사실은 색깔을 색깔로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다 분명한 작의(作意)가 노출(露出)됨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여러 기본적인 조건위에서 제작되는 최명영의 “평면조건”은 외형상(外形上)으로야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

숙련된 행위에 의해 매끄럽게(均質)하게 다듬어진 작품의 표면(表面)과 그 밑에 가리워진 똑같은 10여개의 표면들이 상상되는 것으로써 작업과정과 작품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의 투사(透射)가 가능한 데서 작품의 투명성(透明性)이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작업에 있어서는 단조롭고 일정한 리듬으로 유지되는 작업과정에서 발생(發生)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짐짓 일부러 무엇인가를 꾸미려하지 않는 행위의 무상성(無常性)에 근거하고 있는 이 투명함이야 말로 수정체와 샅은 심도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매끄러운 표면은 미세(微細)한 질료(물감)의 응집체(凝集体)로서 가까이서 보면 물감과 도구(붓, 로울러, 나이프 따위)의 성격에 따른 표정의 다양함이 눈에 띈다. 하지만 육안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때 질료와 도구에 의해 생긴 표정은 사라지고 단순표면(單純表面)만 인지된다.

이와같은 현상은 질료(質料)가 물질적(物質的)인 한계에서 벗어나 정신구조화(精神構造化)되었음을 뜻한다. 똑같은 행위(作業)를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물성(物性)이 제거되는 것이다.

또한 물성이 제거됨으로써 물질을 물질로 파악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끝내 허황한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그의 작품과 화답하기 위해서는 사유(思惟)를 돕는 마음의 눈, 즉 정신활동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그것은 굳이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의 전개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무심(無心)한 가운데 가장 정적(靜的)인 순간에 직관(直觀)되는 느낌으로써 족(足)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거기엔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에 관심으로 가짐으로써 그의 방법적 서술(敍述)은 더욱 명료해질 것이다. 물감을 틀(캔버스)의 한계선 밖으로 밀어낼 때 도구(로울러)의 힘이 미치지 않기 시작하는, 이른바 틀과 틀을 감싸는 외부공간(外部空間)과의 접점(接點)에 나타나는 질료의 표정(表情)이 바로 그것이다. 거의 임의적(任意的)이기까지 한, 이 불규칙(不規則)한 물감의 흔적(痕迹)이야 말로 최명영의 작업 가운데 가장 신선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틀위에 놓이는 구조물(構造物)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품 “평면조건”을 자연화(自然化)시키는 열쇠가 되기도 하는, 이 부분은 생명체의 생성부분(生成部分)과도 같다.

생명이 움트는 부분으로서, 우주공간에 진입하는 통과문(通過門)의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이 있음으로써 회화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분이 겹쳐지면서 더욱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캔버스라는 이미지는 틀 자체(自體)와 함께 「질료의 무덤」속에 침잠(沈潛)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남는 것은 생경한 느낌의 화학물질이 아닌, 온전한 구조물이라는 또 다른 세계이다.

캔버스(틀)의 실체(實體)를 의문하다가 의사평면(擬似平面)을 만들고, 마침내 의사평면이라는 가정(假定)마저 떨쳐버리고 정신적인 프로세스(process)를 강조하는 이상한 존재로 변모한다. 여기서 이상한 존재라 함은 낯선 것이며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예측하지 못한 미지(未知)의 몸짓들인 이 물감의 흔적은 곧바로 구조물을 감싸고 있는 우주공간과의 호흡대(呼吸帶)가 됨으로써 지구와 동일한, 대지(大地)의 개념이 성립된다.

반복적인 도포작업(塗布作業)은 어쩌면 시간쌓기(時間層)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시간쌓기라 함은 오랜 세월동안 흙, 먼지, 돌 등이 바람과 물 등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운반되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지층(地層)의 다른 표현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명영의 작업은 인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어 자연현상과는 구별되고 있지만, 물질개념(物質槪念)이 아닌 정신개념으로 볼 경우 행위의 반복에서 나타나는 무위성(無爲性)의 흔적, 즉 「구조물을 감싸고 있는 우주공간과의 호흡대」에서 인위가 사라짐을 볼 수 있다.

이 때 나타나는 현상, 즉 인위(人爲)의 사라짐은 곧바로 무위(無爲)의 다른 말이 되므로 자연현상화(自然現象化)로 직결된다.

따라서 되풀이되는 도포작업은 질료(質料)라는 물질을 쌓는 작업이면서 결국은 사상(思想)의 쌓임으로 환치(換置)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투명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물질을 물질로 보지 않을 때 열리는 세계는 그대로 환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외형적으로야 겹쌓이는 시간의 흔적인 도포작업이 작품의 지층(地層)으로 형성되어 새로운 땅(大地)을 실현(實現)케 된다. 하나의 온전한 대지가 마련되어 새로운 공간(空間)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작품의 완성과 함께 평면(平面)에 대한 의식은 감춰지고 만다. 평면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평면이 아닌 입체(立體)로서의 소우주(小宇宙)가 전개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은 순전히 물감만을 겹쳐 쌓음으로써 평면을 뛰어 넘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최명영의 작품에 나타난 의사평면성(擬似平面性)은 4각이라는 틀(캔버스)을 전제(前提=假定)했기 때문에 생기는 선입견일 뿐, 실제로는 전혀 평면도, 4각(四角)도 아니란 사실이다. 단지 그렇게 보이거나 그렇게 상상(想像)될 뿐이다. 아무런 전제도 없이 “평면조건”류(類)의 어느 작품을 별안간 마주했을 때 과연 평면으로 또는 4각(四角)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의사평면성이라든가 평면의 한계극복(限界克服)은 물질의 덧쌓임만으로는 성취(成就)할 수 없는 것임이 명백해 진다. 또한 여기에서 그만의 방법적인 비밀이 모두 드러난다. 물질을 정신작업으로 이행(移行)시키는 것이 최명영의 행위가 지닌 남다른 면이다.

물론 행위가 가해지는 순간의 감정의 기복(起伏)이라든지 육체적인 호흡(呼吸)의 강약(强弱), 알맞고 필요한 만큼의 정신적인 통어력(統御力), 질료의 혼합정도(混合程度), 도구(道具)의 선택 등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狀況)의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처럼 여러 가지 다른 조건과 상황에서 빚어지는 작품들을 대하는 우리의 느낌도 모두가 하나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서둘러 작품의 성숙도(成熟度)를 가려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고 우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이미지의 추출에서 오는 감수성 높은 미의식(美意識)의 발현(發現)이 아닌, 정신의 순화정도일 것이다.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지층(地層)이 형성되듯이 작업과정에서 만 가지 상념이 행위를 통해 질료(質料)속에 녹아 흘러들게 되며, 수 없이 되풀이되는 행위는 정신의 집중 및 통일(統一)을 유도하게 되고 급기야 무위(無爲)한 지경(地境)이 된다. 여기에서 무위성(無爲性)이란 행위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정신의 공유개념(共有槪念)을 포괄한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 지키는 행위의 덧없음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물질과 정신이라는 결코 융합(融合)될 수 없는, 이원화(二元化)된 두 조건을 합일(合一)하여 물질의 정신화를 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도자적(修道者的)인 자기절제(自己節制)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의 방법에는 높은 지적체험(知的體驗)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지적체험이란 사상(思想)의 달변(達辯)을 뜻함이 아니라 묵상(黙想)과 같은 정신의 집중일 수가 있다. 이러한 정신의 집중은 작품을 위한 행위와 따로 분리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행위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정신의 깊이가 바로 지적체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적막감(寂寞感)”은 무엇인가. 사전(辭典)풀이와 같은「고요하고 쓸쓸함」일까.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단순한 느낌에 불과할 뿐이다. 그림에 나타나는 “적막”이란 우리의 전통화인 동양화(東洋畵)에서 엿보이는 격(格), 즉 화격(畵格)을 의미한다.

하나의 사물(事物) 또는 실체(實體)를 그렸을 때 EH는 실체를 감싸고 있는 여백(餘白)이 있게 마련인데 이 여백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어 거기에서 받는 인상이 우리의 마음속에 적막감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동양화에서는 전혀 생소한 느낌의 사물 또는 실체가 별안간 화변에 나타났을 때 비롯되는 팽팽한 긴장감을, 이 여백이 부드럽게 감싸게 됨으로써 화면속의 사물 또는 실체는 비로소 영원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백은 결코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만 된다.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마음으로 거른 후에 거기에 남는 것만을 화면에 옮겨놓음으로써 완성되는 동양화는 어쩌면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의 작업이라고까지 단언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물을 화면에 옮길 때의 감격 즉 격한 감정이 마음을 통해 여과(濾過)되고 순화(醇化)되어 형체가치(形體價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의 형체가치를 예술로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여백인데 이 같은 여백이 바로 최명영의 작업에서 감지(感知)된다.

물론 여기에서 여백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空間)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격(格)이 담긴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문자기(文字氣)가 느껴지는 실체(實體)의 공간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하여금 최명영의 작업에서 실체의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하는가. 되풀이 하거니와 최명영의 작품에는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형체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실체의 공간을 설명할 수 있을까.

굳이 찾아낸다면 작품 속에 은거(隱居)하고 있는 최명영 자신의 존재성(存在性)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존재성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표현 욕구를 다스리는 가운데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부각(浮刻)되는 작가의 모습이 바로 존재성이며, 이 존재성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동양화의 여백이나 다름없는 무표정한 평면이 실체의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화면의 균질을 꾀하는 동안 질료(質料)에서 물성(物性)이 제거되고, 정신화(精神化)된 구조물이 된다는 방법적 전개과정에서 최명영이라는 존재의 사라짐을 실천하려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최명영이라는 존재를 더욱 뚜렷이 바깥으로 내몰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 작업의 결과가 너무 독특한 것이기에 곧바로 최명영을 연상하게 되고, 또 실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존재성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의 존재성이란 단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최명영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최명영이 있음으로써 얻어지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격(格)의 그림자가 바로 존재성일 것이다. 또한 이 격(格=格調)의 그림자가 심리학적(心理學的) 측면에서의 내향성(內向性)과 뜻을 함께 한다면 최명영의 작업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좀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이유는 한 인간의 성격형성 과정에서 생활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아동심리학을 들지 않더라도 인격형성과 더불어 조성(造成)된 미의식(美意識)에 대한 성장기의 심인(心印)이 한 작가의 예술세계에 불가분(不可分)의 작용을 하리란 사실을 결코 부인(否認)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에서 그의 어린 절과 만나 그의 작품에 영향하였으리라 짐작되는 몇 가지 사실들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황해도 해주(海州)가 고향인 그는 이미 어릴 때부터 감수성(感受性)이 예민하여 「비가 오는 날이거나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집 앞 오동나무의 커다란 잎이 음산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남달리 무서움을 느끼곤 했었음」을 기억한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공산치하에 있을 때 지주(地主)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 야음(夜陰)을 이용하여 온 가족이 용담포를 거쳐 탈출하던 그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6.25를 만나 다시 뗏목을 타고 이름 모를 섬으로 피난을 떠날 때의 그 절망적인 기분을 지금껏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패잔병이라든지, 서로 먼저 배를 타려고 아우성치던 피난민들, 그리고 부상병을 싣고 가던 앰블런스가 바다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든지 하는 따위의 처참한 전쟁의 모습을 수 없이 목격하게 됨으로써 여린 그의 감수성을 크게 다치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적치하에서 보내던 때의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어두움에 싸여 성장해온 최명영은 「열등감이 많고, 내성적(內省的)이며, 염세적(厭世的)인」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천 사범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잠재의식(潛在意識) 속에 남아 있는 성장기의 인상들을 보다 확실한 것으로 남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정상화(鄭相和)선생님의 부임으로 그림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고, 동시에 본격적인 그림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는 미술실에 남아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지만 무언가 자신도 모르게 언제나 불만에 차 있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도무지 시원스럽지가 않아 「살을 대고 비비적거리고 싶고, 물감 속에 푹 빠졌다 나온 것 같이 온 몸으로」표현하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다.

사범학교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선생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이었으나 예술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발산(發散)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자 3학년 때 선생이 될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는 홍익대학에 진학했고, 그로부터 그의 예민한 감수성은 그림이라는 표현 행위를 통해 보다 확실한 모습으로 형상화(形象化)되기에 이른다.

그의 집(仁川)에 돌아오면 판자집 구석에 틀어박혀 촛불을 켜놓고 자화상(自畵像)만을 무수히 그려댔다. 공간이 좁은 탓도 있지만 「나르시소스」적인 자기애(自己愛)의 일면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 같은 과정에서 그는 사물(事物)의 모습을 아무리 똑같이 옮겨 놓으려 해도 끝내는 더욱 분명한 비실재성(非實在性)만을 느낄 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리얼리티」가 없는 세계는 결국 거짓이라는 자각(自覺)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갈구(渴求)하는 내면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수틴(Soutine)의 화집(畵集)을 보던 중 빨간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인물의 손에 가해진 「디테일」에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이란, 물감이라는 재료가 작가의 손을 통해 캔버스에 어떻게 놓이는가에 때라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 때 부터 종래의 물감을 칠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화면에 불감을 붙여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밀도문제(密度問題)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자연히 색다른 것으로 변해갔다. 물질감(物質感)을 위주로 한 인체습작(人體習作)에 열중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향성(內向性)을 탈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틴」의 화집을 보고난 후부터 그때의 느낌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내면적인 것을 외부(外部)로 발산하고픈 심정이 되곤 했다. 그는 3학년이 되자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면서 동기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가졌고 이러한 시기에 「오리진」창단멤버가 되어 전람회에도 참여한다.

앵포르멜 말기(末期)의 현상에 영향을 받은 그는 화면에서 인체(人體)를 없애는 작업에 심취했다. 이로 인해 실체(實體)가 갑자기 사라진 데서 오는 공허감이 생겼다. 그는 3점 정도를 그런 식으로 만들고 나서 그 같은 상태로는 더 이상 「오리진」에 작품을 내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그는 커다란 캔버스를 놓고 그 위에 검은 안료(顔料)를 뿌린 뒤 빗자루로 쓸어내린 작품을 만들어 「오리진」에 출품했다. 아무런 형태도 없어 회화적(繪畵的)인 재미는 없었지만 행위를 통해 맛볼 수 있는 시원스러움은 새롭게 받아들였다.

대학 졸업 후 조교생활을 하는 1년 동안은 거의 작업과 동떨어져 있었다. 생활이 어려워 재료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66년, 앵포르멜적인 내면세계에 기하학적(幾何學的)인 요소를 절충한 작품(悟 26-A, 26-B)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고, 이어서 67년에는 당시 화단에 처음 등장하게 되는 기하학적인 경향의 일련의 작품을 한국청년작가연립전(韓國靑年作家聯立展)에 출품하여 심메트릭한 균제의 세계를 보이다가 6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이르러서는 표현을 완전히 제거한 「메카닉」한 선(線)으로 구성한 새로운 작품을 출품하게 된다. 우주(宇宙)속에 놓인 실체(實體)를 표현하려고 했던 이때의 작품의 경향은 질료(質料)와 기하학(幾何學)의 만남 같은 것이었다. 직선을 피해 펜촉의 곡선 따위로 화면을 구성했고, 중간색 계통으로 인간의 감정이 개입된 어떤 우주적인 신비감을 포착하여 했다.

그러다가 70년대로 접어들면서 평면에는 엄숙하고 장중(莊重)한 느낌이 드는 심메트리(Symmetry)한 작품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70년도 중앙공보관에서 가진 「A·G展」에 「변질(變質)」이라는 명제를 붙인「오브제」작품을 출품함으로써 평면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한다.

실체(實體), 즉 「오브제」를 등장시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된 「변질」은 전시실 바닥을 드러내고 거기에다 시멘트관(管)을 놓은 뒤 천으로 고정시킴으로써 물질 자체가 갖는 생경한 모습을 느끼도록 하는 일이었다. 이 때 천으로 고정시키는 이유는 거대한 지구에 놓은 조그만 실체(實體)가 어떤 모습으로 변질(變質)되어 나타나는가를 주시(注視)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71년 「A·G展」에는 각목에 검은 천을 씌워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놓고 그 속에 속과 스폰지를 곱게 넣어 점점 내려 오면서 양이 적어지는 모습(變質一極)을 출품했는데 이것은 생성(生成)과 소멸(消滅), 다시 말하면 극(極)과 극(極)을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생명력(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을 형태화(形態化)시켜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저의는 물질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상태로」변화되어가는 모습, 즉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물질이 정신세계로 환원되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 있었다.

또한 하드보드紙를 일부 오려내어 거꾸로 붙여 놓는다든지 두꺼운 나무판 위에 역시 같은 나무판을 동그란 원으로 오려내어 붙여 놓고 그 옆에 움직임을 나타낸 하얀 흔적을 표시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변질」작품들을 통해 물질과 정신이라는 2개의 개념(槪念)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지켜보고자 했다.

그리고 73년부터 시작된 「등식(等式)」이란 타이틀을 가진 작품들을 발표함으로써 다시 「캔버스」작업으로 돌아왔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 「등식」類의 작품들은 모노크롬(單色)위에 행위(샌드 페이퍼질)를 가해 예상(豫想)하지 않은 또 다른 공간(空間)을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매체(媒體=샌드 페이퍼)를 빌리기 보다는 「캔버스」에 정신(精神)을 직접 옮겨 놓을 수 있는 손의 의미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물질을 정신관계로 이행(移行)시킨다는 의도(意圖)가 손이라는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실현되기에 이른다.

손에 직접 물감을 묻혀 「캔버스」위에 군데군데 점을 찍듯이 문지르는 따위의 행위의 신선함을 통해 물감을 빗물질화(非物質化) 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행위에 어떤 리듬감이 실리고 집합적(集合的)인 요인(要因)이 형성되기 시작하더니 대(帶)가 생기도 계단(階段)과 유사한 상(像)이 떠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표현의 신선함이 있는 대신 절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화면의 균질(均質)이 가해지고 화면 전체를 덮어버리게 되면서 마침내 「캔버스」라는 4각(四角)이 하나의 단위(單位)로 변하고 만다. 상(像)이 겹쳐지고 마음이 포개지면서 캔버스는 하나로 통일(統一)되는 것이다.

이 때 최명영은 새로운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행위의 반복이 주는 의미, 즉 「상(像)이 겹쳐지고 마음이 포개지는」 현상(現象)을 평면의 한계에서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점이 제기된 것이다. 이래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평면이 아님을 확인하고픈 열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평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내 평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같은 고민에 빠져있던 어느 순간, 그는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문지를 때 감득(感得)되던 「캔버스」천 자체의 돌출(突出)이 주던 미묘한 촉감을 문득 되살리게 된다. 그래서 그는 종이에 먹물을 덮은 뒤 뒤에서 솔로 두드려 화면에 「마테엘」을 냈다. 이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평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화면에 나타난 그 「마티엘」은 존재가 밖으로 확산(擴散)되면서 동시에 화면으로 외부세계(外部世界)를 불러들이는 작용을 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평면(캔버스)을 규정짓는 틀, 즉 평면과 바깥세계와의 접점(接點)이 문제였다. 화면의 전후(前後)는 평면으로서의 한계극복이 가능하지만 이 「바깥 세계와의 접점」은 여전히 평면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된 것이 바로 오늘의 「평면조건」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캔버스」 측면을 물감으로 쌓았다든지, 혹은 둥글게 갈아내는 등 몇 차례의 단계적인 모색기(摸索期)가 있었다.

화면 전체를 물감으로 덮어 씌었을 때 「외부세계와의 접점」은 자연히 입체화(立體化)되었고, 모든 작업이 하나의 단일면적(單一面積) 속으로 통합되면서 심리적(心理的)인 안정도(安定度)가 훨씬 높아졌다. 하나의 단위에서 비롯되는 작업의 확실성과 보다 넓은 세계로의 지향(指向)이 성취(成就)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방법을 되풀이하는 데서 오는 질량감(質量感)은 최초로 평면, 즉 「캔버스」의 존재성을 삼켜버리고 만다. 「캔버스」의 존재성이 사라짐으로써 완전한 입체평면이 실현되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의 형을 새롭게 운명 지워 주는 측면의 다양한 표정은 그의 작업을 하나의 자연현상(自然現象)으로까지 승화(昇化)시켜주고 있다 할 것이다.

최명영은 최근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사실을 추적하고 있다. 이제까지 거듭해온 「평면조건」을 보다 객관화(客觀化)시키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평면조건」이라는 하나의 단위를 여러 개로 펼쳐놓고 조각조각으로 모인 즉, 개개의 단위가 어떤 형태로 새로운 전체를 이루며 또 그 전체는 역(逆)으로 어떤 통일감(統一感)을 얻는가 하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

그라프 단위로 모인 여러 개의 단위들은 서로의 존재태(存在態)를 간신히 넘나들며, 존재태 사이에 선(線) 아닌 선을 만들고 화합한다.

이로써 하나의 단편(斷片)들이 모여 스스로를 더욱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할 것이다.

두 물질이 만나고 떨어지며 서로의 「존재의 스며감」을 실현하는 동안 선·물감·바탕이 하나로 귀일(歸一)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하나로 있을 때보다 더욱 생생한 존재감(存在感)을 드러낸다. 여럿 속에서 단위의 실체감(實體感)이 더욱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의 작업으로 벌전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방법의 전개가 하나의 뚜렷한 목표에 의해 유도(誘導)되고 있는 점이다.

하나의 조건이 주어지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조건을 실체화(實體化)시키려한다. 의문을 의문으로 남겨둘 때에는 아무리 새로운 방법이 나온다고 해도 그 근거가 불투명하므로 설득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명영의 작품에서는 인식(認識)의 냄새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꽉 들어차 있는 듯한 느낌이 주는 비논리성(非論理性)은 어쩌면 그의 작품 「평면조건」에 나타나는 외부세계와의 접점의 갖가지 표정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표정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라 할 수 없는 철저한 지적체험의 한 결과일 따름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튼 그의 작업을 통해 표출(表出)되는 개성(個性)은 엄연한 물질일지라도 한 작가의 독특한 방법에 의해 물질성(物質性)을 상실한 채 정신화(精神化)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작가의 정신구역(精神區域)을 통과시켜, 보다 더 발전되거나 또는 변질된 상태로 상승시키는데 있을 것이다.

한 곳에, 아니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않는 이 같은 태도야 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작가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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