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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조건(The Conditional Planes) 2022

최종 수정일: 5월 31일

1. 들어가는 말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진리 하나뿐이다. 동아시아의 진리는 변화 속에서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철학에서 불역(不易)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변(不變)은 있을 수 없다. 하늘과 땅의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의 자리와 어머니의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 이를 불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선인들은 변화하지 않는 것(不變)을 추구하지 않았다. 선(善)도 악(惡)으로 흐를 수 있으며, 악도 지극한 노력으로 선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改過遷善). 선이 악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선이 악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영구적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을 우리는 수양이라 말한다. 수양은 대단히 역동적 자기 성찰이자 적극적 실천 속에서 완성된다. 자기 성찰과 실천으로 수양이 지속되면 나의 삶은 과(過)도 불급(不及)도 아닌 중용(中庸)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마치 넘어지지 않는 팽이처럼,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삶은,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일시적으로 휘청거리며 큰 원을 그릴지언정 이내 더욱 견고한 원심력을 회복하며 평형상태의 회전력을 유지한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켜 참된 사람(眞人), 혹은 군자(君子)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설정에서도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군자는 세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세상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도리에 떳떳하며 시류에 직면해서도 바름을 잃지 않으면 이것은 가능한 것이다. 세상을 잊으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지극히 고원(高遠)하여 쓸모없게 된다. 세상을 추구하는 것에 뜻을 두면 그 지나침이 비루함 속으로 흐르게 되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성현께서는 뭇사람들과 달라서 그 재기로써 사람들을 기를 수 있으며, 어짊으로써 사물의 본성을 모두 드러내고, 지혜로써 행위를 다스릴 뿐이다.

     

   군자나 선비는 모두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한국 미술계에서 이러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보게 될 작가이다.

     

2. 자연스러운 전개(natural unfolding)

   한 예술가의 위대성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모든 성과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판단된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한 작가의 성과를 목도하고 있다. 최명영(崔明永) 작가는 1941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국립인천사범학교에서 정상화(鄭相和, 1932-) 작가에게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석정(石鼎) 이봉상(李鳳商, 1916-1970), 천경자(千鏡子, 1924-2015), 박서보(朴栖甫, 1931-) 등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생생한 자취로부터 현대미술의 진가를 체득했다.

   최명영 작가의 진가는, 선대 화가들의 계보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거나 존숭한 태도에 있지 않다. 당대 유행했던 국제양식에 대한 근본 물음으로부터 자기의 세계를 정립해갔다. 유산(역사)과 당대 현실을 종합한 데서 최명영 작가의 진가가 드러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는 혼돈의 시기였다.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미술의 역사란 계보의 릴레이 경주로써 서술되었다. 서양미술사에서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의 네러티브와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네러티브가 있다. 동아시아 역사에도 여러 판본의 서보(書譜)와 화보(畫譜)가 존재한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현대미술은 릴레이 경주와 같다.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에게 배턴을 넘겨주었다. 마네는 다시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에게 배턴을 주었다. 세잔은 배턴을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에게 주었고, 마티스는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피카소는 배턴을 미대륙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에게 넘겨주었고, 잭슨 폴록은 그것을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배턴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때부터 혼란이 이어진다. 회화에서 정종(正宗, orthodox) 개념이 퇴락하기 시작했다. 정종, 즉 ‘orthodox’는 ‘바르다’는 뜻의 그리스어 ‘orthos’와 ‘견해’라는 뜻을 지닌 ‘doxa’의 합성어이다. 회화에서 바른 견해라는 개념이 와해하면서 혼란이 생겼지만, 혼란은 반대로 자유로운 견해의 창발(創發, emerging)을 유도했다. 다음은 혼란 속에서 일어났던 격정의 순간에 대한 개요이다.

   1964년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는 1964년 “추상표현주의는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미니멀리즘은 전대에 대한 도전적 선언이자 새로운 태도의 천명이었다. 산업공정의 산물을 미술계에 도입하여 “특수한 사물(Specific Objects)”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했고, 급기야 작품감상에서도 오감(五感)을 통한 공감각적 감상을 유도했다. 전시장에 음악이 개입되는가 하면 발로 밟고 손으로 만지는 행위를 모두 허용했다. 저드는 특정 장소에 특정 작품을 배치한다는 ‘placement', 즉 ‘정치(定置)’ 개념을 미술에 도입하기도 했다. 물론 정치는 산업공정에서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한다는 개념이다.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1931-2020)는 동료에게 자신이 포함된 배경을 사진 찍도록 하고 일요화가회 아마추어 화가들에게 배경 사진을 그리게 했다. 존 발데사리는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에 작가의 그리는 행위가 개입되었는지가 아니라 의도에 있다고 천명했다. 이것이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의 시작이다.

   1962년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1933-)는 거울에 그림을 그려 움직이는 실체를 회화의 주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더기와 고전 조각을 함께 전시하면서 사물의 위계를 전복하고자 했다. 이에 고무된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 1940-2020)는 1967년 「사유의 공간(Im Spazio)」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첼란트는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일상의 평범한 것이 예술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물리적 존재와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된다.……우리는 탈(脫)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 도상적 전통은 무너지고 있으며, 상징적이고 전통적 언어는 허물어지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상의 모든 것이 의미 있으며, 제로 기반에서 미술을 다시 시작하여 산업 산물과 자연의 모든 대상을 예술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가장 단순한 형식과 메시지를 던지며, 삶의 생생한 에너지를 예술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우환(李禹煥, 1936-)은 1969년도에 작성한 「세계와 구조(世界と構造)」라는 글과 1970년에 완성된 「발견하는 신인들(發見する新人たち)」이라는 결정적 글을 발표했다. 나중에 모노파(物派, the School of Things)로 명명되는 사조는 나와 세계 사이의 객관적 관계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는 사실로부터 나와 세계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총체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의 주객 이원론을 극복하여 세계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이어졌다는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라는 것은 사실 바깥에 보이는 모든 것, 꽃, 나무, 대지 등과 연결되어있습니다.……인간은 ‘내적인 존재’라기보다는 하이데거의 실존적인 의미의 현존재성과 그 장소로 얽혀 있다는 세계 내 존재성으로 꾸며진, 다시 말하면 ‘외부와의 관련 속에서 이미 세계와 엮여 있는 신체적인 존재’입니다.

     

   단색화(單色畵)는 이렇듯 혼란 속에서 세계 곳곳에서 창립되는 미술운동과 마주하면서 독자적 양식과 작업 태도를 마련한 은감불원(殷鑑不遠)의 철학이었다. 은감불원은 타자를 거울삼아서 나를 닦아가는 삶의 자세를 가리킨다. 단색화가 기울이는 관점은 미니멀리즘의 “특정한 사물이 어째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있지 않다. 아르테 포베라처럼 평범한 것의 단순성과 삶의 생생한 메시지를 느끼려는 전복적 사고도 아니다. 개념미술처럼 제도의 반성도 아니고, 더욱이 창작의 위계를 다시 쓰려는 사고도 아니다. 모노파는 신체를 중시한다. 모노파에서 이야기하는 신체는, 외부(세계)와 내부(정신)를 매개하며, 인간을 보다 넓게 열린 곳으로 눈뜨게 해주는 근원이다. 따라서 의식과 신체는 상호 협동하는 일은 있어도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식보다 훨씬 큰 세계와 열려있는 것이 신체이다. 모노파가 주장하는 신체는 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색화의 철학은 의식을 초월하는 신체와 신체가 세계와 관계하는 내밀한 구조를 파악하려는 모노파의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색화는 이러한 국제적 미술운동들의 사유구조를 파악하는 한편 독자적인 길을 모색했다.

   단색화의 많은 대가 중에서도 최명영 작가의 작품 속에서 단색화의 철학이 명료하게 펼쳐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명영의 예술세계는 자연스러운 전개, 즉 자연스러운 펼쳐짐(natural unfolding)이다. 마치 풀씨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을 때, 그 풀씨는 발아하지 못한다. 그러나 풀씨는 욕망이나 의지로 발아처(發芽處)를 찾는 것이 아닌데도 아스팔트 길 위에서 발아되는 기적을 연출한다.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연은 자기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삼라만상으로 자기의 뜻을 펼친다. 풀씨가 아스팔트에서 발아되는 것은 우연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뜻이다. 즉, 필연이다. 최명영 작가는 말한다.

     

죽을 때까지 헤맨다. 시작부터 헤매왔고 평생을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헤맨다는 것은 외부세계의 우연을 내면의 필연으로 합치시키겠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다. 최명영 작가의 세계는 1960년대 「悟」 연작으로 비롯되었다. 기하학적 추상 양식의 이 연작으로 작가는 한국청년작가연립전(1967), 제5회 파리 비엔날레(1967), 상파울루 비엔날레(1969) 등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시회에 참여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미술이론가 이일(李逸, 1932-1997)의 현대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이라는 논리를 수용하여 「등식(等式, Sign of Equality)」 연작을 선보였다. 환원(reduction)이란 바탕(본질)으로 회귀하려는 정신적 의지를 가리키며, 확산(diffusion)이란 바탕(본질)에 개인적 정서와 감정을 용융(熔融)시켜 회화와 감응하려는 주체의 표현이다. 등식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언어, 사람과 문화 사이의 등가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거니와 세계(우주)가 지극히 평등한 조건(법칙) 아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유를 표출하고 있다.

   등식에서의 사유는 드디어 평면조건(平面條件, conditional planes) 연작으로 진행되게 된다. 조건(條件)은 어떤 사물(thing)이나 사건(event)이 성립되거나 발생하는 데 갖추어야 하는 요소(要素)를 가리킨다. 동시에 조건은 나뭇가지가 자라는 이치로 보아 조리(條理)로 볼 수도 있다. 첫째로 작가는 소지(素地, 바탕)에 손가락(손바닥)으로 물감을 반복적으로 찍는 작업을 선보였다.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일차적인 감각은 시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대상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은 촉각이다. 붓이나 기타 매체를 거치지 않고 손가락(지문)으로 직접 물감을 바르는 행위는 물질(물감)과 정신(소지는 원천으로서의 정신을 상징) 사이에서 작가가 일체화되려는 의지이기도 하거니와 물질과 정신 사이에 개입되는 작가의 총체적 감정을 통어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있다. 작가는 화면 밖으로 정서를 표출시켜야 하는 동시에 소지라는 원천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화의 철학적 본질은 가상도 아니고, 표현도 아니며, 형식주의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회화의 바뀔 수 없는(不易) 본질은 평면성이다. 이 대전제로 환원해야 하는 동시에 개인의 특수한 사정과 정서, 표현의지는 화면 밖으로 넘쳐흘러야 한다. 더군다나 작가는 이 모든 것을 겸허하고 담백하게 완수해낸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가득하면 덞을 부르고 겸손하면 더함을 받는다.

     

   1970년대 작가는 회화적 실험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70년대 중엽 작가는 산업이나 건축에서 사용하는 롤러를 회화에 적용한다. (물론 여기서 미국 미니멀리스트의 태도를 상기해서는 곤란하다.) 작가가 유화물감을 캔버스에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도포한 것은 층위(layer) 혹은 단(段)의 구축을 위해서였다. 동시에 캔버스 틀 밖으로 물감이 뻗치도록 밀어서 캔버스라는 한계상황을 초탈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따라서 나는 이 롤러로 밀어서 구축한 시간의 층위에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축적되어 있다고 본다. 자연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와 대화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인간의 역사는 저술가의 의도나 견해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역사에서도 진리는 반드시 드러난다. 작가는 롤러 연작을 “벙어리 회화”라고 부른 적이 있다.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회화의 말 없는 표정과 초탈하려는 움직임의 흔적에서 이미 존재해왔던 수많은 회화적 언어를 뛰어넘고 있다. 작가는 다시 말한다.

     

우연에서 필연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창조의 계기를 마련한다.

     

   앞서 풀씨가 아스팔트에서 발아하는 기적은 우연인 동시에 필연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선택과 반복을 간단(間斷) 없이 거듭해왔지만, 변화의 과정에 필연적 논리가 내재한다. 지문 작업은 물질과 정신을 화해하려는 집념의 결과였다면, 롤러 작업은 지난한 반복행위를 통해서 시간과 역사의 속성을 구조화했다. 물질, 정신, 시간, 역사라는 요소는 다시 생성과 소멸이라는 논리로 전개된다. 그것이 송곳 작업이다. 한지의 후면에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 무정형(amorphousness)의 구멍으로 질료가 침투되고 다시 손바닥의 촉각으로 질료는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우리는 생성(生成)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소멸(消滅)되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스스로 그렇게 펼쳐진다고 직감할 뿐이다. 이 연작에서 보이는 구멍은 존재의 심연(深淵)을 상징한다. 풀리지 않는 비밀을 상징한다. 피안(彼岸, 작품의 후면)이면서 동시에 구체적 현실과 통하는 문(門, 작품의 전면)이다. 만물의 생장소멸(生長消滅)에는 알 수 없는 법칙의 운영이 자리할 것이고, 이 법칙에 일방적으로 거역하지도 무조건으로 순응하지도 않으며 담담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관찰자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생성과 소멸은 순전히 회화적 언어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삶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작가의 갈망을 읽게 된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묻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사명이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하나의 기대와 그 기대의 충족은 언어 속에서 접촉한다.”라고 말했다. 회화적 언어는 최상급의 언어이다. 세계의 비밀에 대한 기대와 충족은 회화적 언어를 통한 작가의 작업행위에서 더욱 첨예화되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생성과 소멸은 자연(우주)의 운영방법이다. 사계절을 통한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순환은 만물을 낳고 기르다 거두어 저장한다(生長收藏). 최명영 작가는, 1980년대부터 자연의 운행법칙을 미루어보아 인간의 실존적 지평에서 나타나는 생성과 소멸의 논리를 회화에 적용한다. 수직ㆍ수평의 반복작업이다. 최명영 작가의 회화세계에 나타나는 수직(vertical strokes) 수평(horizontal strokes)은 각각 직물에서의 씨줄과 날줄을 연상시킨다. 이를 경(經)과 위(緯)라고도 한다. 우리는 경위(經緯)를 가리켜, 일이 진행되어 온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작가는 수직에 인간사의 총체적 축적의 의미를 부여한다. 즉,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수평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모든 인간사를 뜻한다. 즉, 지금부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가리킨다. 그런데 씨줄과 날줄이 반복적으로 집적되면서 드러났던 형상이 지워지기도 하고 이미 지워진 단층(單層) 위로 또 다른 층위가 새로이 생성되기도 한다. 반복되는 부침(浮沈)의 과정 속에서 수직ㆍ수평의 부분 단위는 전체와 완결된 짜임새를 구축한다. 물샐틈없이 옹골진 전체의 구조는 ‘역사의 장기적 합리성’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역사의 장기적 합리성’이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문제가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꾸준히 개선될 것이라는 관점을 가리킨다. 작가는 삶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만은 경계한다. 비관주의에는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 시대정신, 그리고 운(運)이라는 날줄이 합쳐져 직조된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최명영 작가는 경험을 중시한다. 그림(회화)은 순수직관만으로 그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은 역사와 시대의 흐름, 개인의 노력과 운세가 모두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역시 “회화는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 그 자체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5년 무렵부터 작가는 평면의 바탕(素地)을 드러낸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뭉개고 짓이겨 수직과 수평 방향으로, 때로는 미세한 사선(斜線)을 구가하여 속도와 호흡, 템포를 조절한다. 완급의 평형상태에서 심리적 거리가 중도를 유지하고 우연과 필연이 모두 드러나 절묘한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소지를 드러내는 형식은 작가가 오감(五感)과 이성, 구상력을 모두 동원하여 이루어낸 결실이다. 작가는 촉각을 동원하여 물질과 정신의 통어(統御)를 꾀한다. 동시에 그림에서 느껴지는 청각적 리듬감은 4차원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정서에 투과해 2차원 평면에 용해하려는 작가의 순수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 저편으로 드러나는 소지는 순수사유가 머무는 자리이다. 드러난 소지를 우리는 원형(archetype)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키타이프는 오랜 역사 속에서 겪은 조상의 경험이 우리에게 전형화되어 계승된 유전적, 정신적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시원적 사유에 해당한다.

     

3. 나오는 글: 영원한 현재(eternal now)

   앞서 “가득하면 덞을 부르고 겸손하면 더함을 받는다.”라는 우리의 전통적 사유를 소개한 바 있다. 덜어내는 것은 전통적 수양법이기도 하다.

     

살면서 시끄럽고 번민하는 것은 모두 지식이 형성된 이후의 일이다. 날이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본연이 아닌 것이다. 이미 (나쁜 습속이) 더해졌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마땅히 덜어 가야하며, 덜고 또 덜어야 한다. 덜어서 더 덜 것이 없을 때 바야흐로 (선의) 본성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만명(晩明)의 사상가 고반룡(高攀龍, 1562-1626)의 말이다. 최명영 작가가 말하는 수양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은 󰡔장자(莊子)󰡕에도 등장한다.

     

순소(純素)의 도리만이 정신을 지킬 수 있다. 이것을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으면 정신과 하나가 되니, 하나 된 정신이 만물에 통하면 자연의 질서[天倫]와도 합치된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익을 중시하고, 청렴한 사람은 명예를 중시하며, 현인은 뜻을 숭상하고, 성인(聖人)은 정신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소(素)란 함께 섞이는 것이 없음을 말하고 순(純)이란 그 정신을 잘 지켜 손상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순소(純素)를 체득한 사람을 가리켜 참된 사람(眞人)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순소(純素)의 개념으로부터 작가가 어째서 소지(素地)를 드러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덜고 또 덜어냄(減之又減)으로써 회화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최명영 작가는 씨줄(수직, 역사)과 날줄(수평, 현금)의 직조로 인간사와 자기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설정했으며, 이 관계의 이상적 재설정, 즉 순소(純素)와 감지우감(減之又減)의 태도로부터 영원한 현재(eternal now)의 즐거움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최명영 작가에게 그림은 작가와 하나이며 작가는 그림이 된다. 이것이 단색화의 정신이다.

     

그림을 그리다/ 그림으로 그리다/ 그림으로 말하다/ 그림으로 느끼다/ 그림으로 보다/ 그림으로 생각하다/ 그림으로 깨우치다/ 그림으로 있다/ 그림이 있다/ 그림으로 묻다/ “내 앞에 그림이 있다”/ 내 그림이다/ 나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나다/ 그림으로 남다/ 

     

   동양 사유의 경지는 성수불이(性修不二)에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본성의 회복을 향한 끊임없는 수양을 강조한다.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 본성의 추구와 수양의 지속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회화의 완성을 위해서도 마찬가지, 회화의 본질 추구와 내면적 수양이 합치해야 한다. 그리고 최명영 작가의 회화에서 보이는 수직 형상은 역사의 시간을 뜻하기도 하거니와 초월적 시간(탈속의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수평 형상은 현금의 세속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의 철학자 필립 키처(Philip Kitcher, 1947-)의 말을 들어보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완벽하게 세속적인 사람은, 자기 삶의 목적을 어렴풋이 이해되는 초월적 실체와 연관된 수직(vertical)으로 이해하지 않고, 개인의 개체적 실존보다 훨씬 광대한 자연 세계와 연결된 수평(horizontal)을 통해 해석할 것이다. 자신이 세계의 부분이라는 내밀한 인식을 통해서,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세계란 다른 사람의 삶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당신의 행위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그러한 현현(the epiphany)이야말로 보다 넓은 연결의 풍부한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립 키처는 신성한 초월(수직)이 아니라 인간세계 내에서의 초월(수평)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철학자이다. 수직과 수평의 의미와 더욱 넓은 연결로서의 소지(素地) 작업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여지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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